훤훤대한
★ 총론總論
천부학(天府學)에는 「피리춘추(皮裏春秋)」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저 마음 속 봄가을”이라는 의미로,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계절이 따로 있는 것처럼, 같은 사안을 대하더라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피리춘추의 한 예로 「좌우(左右)」라는 것이 있습 니다. 자식 교육에 관해 서로 극명하게 갈리는 양부모의 관념 차이를, 같은 기온을 두고 봄 날씨처럼 친근하게, 때로는 가을 날씨처럼 싸늘하게 대하는, 부모의 독특한 채감 전형을 두고 「좌우(左右)」라고 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면, 자식의 미래야 어떻게 되던 우선 많은 것들을 주고보자는,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좌(左)」이고, 애틋함이나 다소의 아픔은 있을지라도, 자식들을 진정 경쟁력 있는 사회인으로 가르치자는, 아버지의 냉철한 교육관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우(右)」라는 것입니다. 이 좌우라는 것은 애초부터 근본적 배경 차이를 두고 태동한 관념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나 현실 정치에 있어서도, 정면충돌하는 괴리 양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두드러진 양상의 일례입니다. 「좌(左)」는, 치우친 모성애적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까닭에 전체를 기울어지게 하거나, 또는 내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겨 스스로를 걸어 잠그는 폐쇄를 지향합 니다. 반면 「우(右)」는, 세상을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함께 끌어가는 유기체로 여기는 까닭에,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하고 지킬 것은 지키며, 공익을 우선하는 주인으로서의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즉 작고 공교한 틀에 사람들을 가둬, 권력을 모권(母權)처럼 공고히 하려는 것이 「좌(左)」이고, 공교한 사람들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하여, 원래 자리로 돌려 보내려는 아버지의 냉철한 마음이 「우(右)」인 것입니다. | |
미루어 바름을 토대 삼아야 하는 정치에는, 절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좌우라는 관념입니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한 번 쯤은 들어 본 질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유치한 질문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치정자들은 지금도 국민들을 좌우(左右)로 갈라 쳐 놓고, 마치 요람속의 아기에게 묻듯 택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치정자들의 이 유치한 질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놀아나는 것을 분열이라고 말합 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들의 분열 획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좌우 분열의 끝은 곧 공멸입니다. 왜 미치지 못하는 치정자들의 좌우 이분법에 놀아나, 우리 국민들이 함께 깨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까? 봄꽃으로 진달래면 어떻고 개나리면 어떻습니까? 또 가을의 꽃으로 국화면 어떻고 코스모스면 어떻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피리춘추라는 개념도 있는 것입니다. 좌우는 동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한 몸일 뿐이지, 시기나 질시 또는 다툼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천제께서는 일찍이 「복 우(祐)」자로 좌우 분쟁 해결에 대한 가르침을 내리셨는 데, 이미 선천 개벽 당시에 본 것과 같이, 나라의 안위를 우선하는 것은 복(福)을 구하는 방법으로, 조건 없이 곁을 내주는 친구나 말없이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 처럼, 그렇게 하늘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