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
□ 발문(跋文) 여느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한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축복인 것이며, 이렇듯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데에는,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하늘의 또 다른 계획이 있기 때문에, 여하한 경우든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것입 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헤아려 잘 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창(窓)」이라는 것은, 건축물의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것처럼, 혜안을 얻어 과거와 미래를 정확하게 들여다봄으로, 실족치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역사와 두 문자에 대해 궁구한 천부학(天府學)을 익혀 혜안을 얻고, 신사임당(申師任堂)이라는 창을 통해 조선사회의 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 장(章)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
|
□ 소나무 “음메!” 하는 그 짐승 소가 열매로 달리는 것도 아닌데 「소나무」라고 합니다. 많은 방울들을 달고 있지만, 정작 워낭처럼 악귀를 쫓는 소리를 내지도 못합니다. 또 잎이라고는 바늘과 같이 뾰족해서 저 혼자서는 조그만 그늘조차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소나무는, 여러 잎들이 힘을 합쳐 큰 그늘을 만들고, 또 솔방울에 스치는 바람의 힘으로 축귀의 소리를 내며, 그렇게 한(韓)의 정령(精 靈)으로 말없이 우리의 곁을 지켜왔습니다. 모여서 애경사를 의논하고, 단결된 힘으로 악에 대항하며, 소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지만, 위기를 당하여서는 곧장 내 이웃의 안위부터 챙기는, 그런 우리들을 일러「한겨레」라고 합니다. 저 나무와 꼭 닮았습니다. 소의 성정을 닮은 우리 겨레의 나무라 하여 「소나무」라고 합니다. 이리저리 발길에 채이는 잡초가 되시렵니까? 구불구불 제멋대로 자라는 배롱나무가 되시렵니까? 잡초가 만든 한 뼘 그림자로는 나그네에게 그늘을 선물할 수 없고,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배롱나무로는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큰 소나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 들어요? 말 못하는 나비도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던 애벌레 시절의 고통을 감내해 냈습니다. 목적물을 향해 맹렬히 한 번 나가 봐야죠. 대신 자벌레처럼 한 발 한 발 자질하며 나가셔야 합니다. |
![]() |
□ 모란
비록 변방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진리 전파의 외침은 큰 울림을 주는 북소리와 같았고, 새로운 세상 건설에 대한 의지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았던, 서른 살 견우(牽牛) 인(仁)의 열정을 『단 (丹)』이라고 합니다. 변방의 그곳에는 천제 견우 인(仁)의 열정 「단 (丹)」만큼이나, 붉은 마음을 지닌 두 사람이 더 있 었습니다. 바로 지도자 새옹(塞壅)과 그의 딸 천영(千佞) 설(卨)입니다. 세 사람의 뜨거운 마음 단(丹)이 합쳐「방주(方舟)」라는 걸작을 만들어 냄으로, 결국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그곳의 지명을「거란(契丹)」이라 부르 게 되었는데, 세 사람의 열정이 합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유월이 되면 그곳의 높은 언덕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그 아름다운 꽃을「모란(牡丹)」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제 견우 인(仁)을 향한 천영 설(卨)의 단심(丹心)이 그와 같은 붉음으로 화했다는 의미입니다. 후 천영 설(卨)은 견우 인(仁)을 따라 거란땅을 떠나게 되었고, 나중에 선천 개벽과 함께 제후로 봉해져, 경(庚)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천영 설(卨)을 두고 “새옹의 말”이라고 놀렸는데, 모란을 닮은 아름다운 미모가 닿는 곳마다 염문을 뿌렸기 때문입니다. | |
□ 박과 수박 박이 복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이유는 밝고 흰 속 때문입니다. 사람이 복(福)을 부르는 소이도 이와 같아서, 개인의 생각이 박속처럼 희고 밝으면 일가의 복을 부르는 것이고, 일가의 기도(企圖)가 건전하고 성실하면 나라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속이 욕심으로 가득 차 검붉은 사람들은 쥐새끼 같은 도적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필연이니, 아무리 착한 척 위장을 해도 검은 속 내가 수박 줄무늬처럼 두드러져, 종내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사임당은, 지식인들을 감시하는 도올의 휘 번뜩이는 눈과 어그러진 치정자들의 탐욕을, 깨진 수박과 쥐 그림으로 고발하였습니다. |
|
□ 패랭이 꽃 품성이 천박한 아귀나 도올 같은 사람들은 패랭이꽃을 두고 하늘 국화(菊花)라고 말합 니다. 한수(漢水)가 같은 변방에서 남의 뒤통수나 쳐 끼니를 잇던 사람들이, 은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권력을 취하더니, 사슴보고 말이 라고 우긴 환관 조고처럼 그렇게 우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뒤통수에 대고 패랭이모자 위에 갓을 덧쓴 평양자(平陽子) 선생이라고 조롱을 해도, 그들은 무식한 속내를 가리지 못하고 실실대며 웃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위틈에 붙어 살면서, 방실 거리는 패랭이꽃은 차라리 예쁜 구석이라도 있지, 감출 수 없는 무식으로 선생 흉내를 내는 가짜들은 차마 봐 줄 수가 없습니다. 신사임당은, 국화 흉내 내는 패랭이꽃과 큰 바위에 맞선 사마귀를 함께 그려, 진짜 선생들의 각성을 촉구했던 것입니다. | |
□ 원추리
마주 난 두 잎은 넓어서 우아하고, 곧은 대공은 바람 앞에 당당하며, 휘황한 금빛 꽃잎에 그윽한 향기를 지녔으나, 인기에 초연한 성정은 두 해를 보지 않고, 다음 꽃에게 곧장 자리를 내줍니다. 그래서 그 꽃을 꽃 중의 임금이라 하여, 「원추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변방의 오랑캐들이 찬탈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더니, 늙어 꼬부라 져도 그 자리를 지키려 갖은 야료를 부리고, 황포를 걸쳤으나 탐욕으로 쉰내가 나며, 어린 백성들에 게나 당당하지 더 큰 힘 앞에 비굴하여 쉽게 고개 숙입니다. 춥고 배고픈 백성들이 닥쳐올 추위를 염려하여 매미처럼, 또는 논 가의 개구리처럼 울어대지만, 배배꼬인 관료들의 대민 지원은 달팽이처럼 굼뜹니다. 하늘의 전령을 대신하여 나비가 거듭 경고를 해도, 임금과 신하라는 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것 챙기기에 급급하니, 식용과 약용으로 자신의 몸 모두를 내주는, 꽃의 임금 원추리 같은 덕(德)을 끝내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잘 이끌어 보겠다는 철학도 지키고자 하는 법도 없는 것입니다. 신사임당은 원추리 그림에, 당시 임금과 신하의 덕 없음을 그려서 후대에 전한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