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創世
□ 발문拔文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이 있는데, 「홍(弘)」은, “동방사람들이 사회변화를 주도했는데, 하늘의 조력이 있어 그 뜻이 널리 확산되었다.”는 의미이고, 「익(益)」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의 이치로 정립되어 변화를 이끌어 냈으며, 80에 이르러서는 서역까지 수중에 넣음으로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또 「인간(人間)」은, “사람들이 곁을 내주어 서로 기댈 수 있게 함으로, 동서의 가운데에 설 수 있었다.”는 의미이니, 즉 「홍익인간」이라는 것은, “동방의 개혁세력 우조단(牛曹團)과 대장 견우(牽牛) 인(仁)의 봉기로 시작된 개혁 바람이, 종내 동서의 열두 강대국들을 하나의 연방(聯邦)으로 묶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서의 열두 연방을 12환국(桓國)이라 하고, 12환국의 최고지도자인 견우(牽牛) 인(仁)을 환인천제(桓因天帝)라고 합니다.
천제께서는 이때부터 갑자(甲子)에서~계해(癸亥)까지 60단위로 순환하는 육갑(六 甲)을 세수법(世數法)으로 사용하셨는데, 12연맹을 완성한 보령 팔십 시점을 원년(元年/甲子)으로 하셨기 때문에, 그로부터 9220년이 지난 서기 2025년 올해가 을사년 (乙巳年)이 되는 것입니다.
※ 9220÷60=153과 나머지 40 / 육갑의 마흔 번 째가 을사년(乙巳年)
이 세수법(歲數法)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과거 기록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서에는 환국부터 시작하는 삼대의 역년을 환(桓) 3301년, 한(韓) 배달국 1565년, 조선(朝鮮) 2096년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전부 더하면 6962년이 되고, 여기에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는 조선의 폐문시기를 임자년(壬子年/BC 128)이라고 거론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치상 환·한·조 삼대 6962년과 BC 128년 그리고 AD 2025년을 더한 합이 9220년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9115년으로 105년이 부족합니다.
세수의 표본인 환기(桓紀)와 삼대의 역년 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애초부터 기록이 잘못되었거나, 누군가에 의한 역사 조작이 있었다는 둘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역년(歷年)은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한 두 해 정도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창업사례를 역사로 기록할 때, 시작을 기준으로 삼을 건지 또는 완성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 건지 등, 약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언이폐지하고 진상은 이러합니다. 동중서와 사마천은 고조선의 폐문과 한무제 유철의 집권 사이에, 너무 많은 사건들을 끼워 넣기 하였습니다. 즉 역천의 반란사건을 가리고, 자신들이 집권하게 된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춘추전국시대니, 위만조선이니, 기자조선이니, 한사군이니 하는, 날조된 이야기들을 끼워 넣기 했던 것입 니다. 그러고 났더니 시간의 옹색함이 큰 걸림이 되어, 결국 고조선 역년에서 105년을 빼고, 자신의 집권시기와 그 전후를 부풀려 풍성하게 했던 것입니다. 또 역사학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하는 시대구분법이 있는데, 이는 꽤나 체계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아주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학설입니다. 청동기(靑銅器)는 구리의 강도를 높이고 녹에 의한 부식을 지연시키기 위해, 비소 3%와 주석 10% 아연 4% 등을 섞어 만든 합금도구입니다. 당연히 철기에 비해 제작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강도나 습에 대한 내구성이 철기에 대비 수백 배, 또는 그 이상일 정도로 뛰어난 앞선 문명의 산물입니다. 즉 비파형 동검이 발굴된 7,000년 전 그 고분에 철기를 함께 부장했다하더라도, 두 도구는 절대 함께 발굴될 수 없는 것이니, 철기는 녹에 의한 부식으로 수백 년 내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언하건데 청동기는 철기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철기를 모르는 청동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분명 이제 막 과학에 입문한 초등학생 수준만 되어도, 능히 알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 상식의 한계조차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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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한 두 사례로 확연히 알 수 있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역사학이라고 공부해 왔던 것이, 이처럼 취약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 돼 왔던 것이며, 인하여 저급한 수준의 거짓조차도 구분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사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보다 유연한 사고로 접근한다면 분명 사안의 본질을 관통할 수 있을 것이나,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루의 틀에 가두는 바보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인들을 다툼 가운데로 몰아가고 있는, 좌우분열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신은 지혜롭다고 말하며 갖은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좌로든 우로든 치우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 말뿐인 정의를 앞세워 갖은 주장을 쏟아내며, 표현의 자유 운운하지만, 정작 건네는 말마다 강퍅하기 그지없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민주니 자유니 민족이니 하며 떠들어대지만, 정작 제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무식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이 쏟아낸 말 쓰레기가 불러올 장차의 환란에 대해서는 조금의 염려 조차 하지 않습니다. 선하나 그어놓고, 왼쪽은 좌(左) 오른 쪽은 우(右)하는 치정자들의 단순한 이분법 에 사로잡혀, 나라사람 전체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20여년의 공부 끝에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고래로부터 선비들의 학문이 라고 일컬어온 “유학(儒學)이 바로 인류 문화의 정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유학의 골격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말의 표현 수단인 『한글(韓㐎)』이고, BC 128년경 한수변의 오랑캐들에 의해 「한자화(漢字化)」된 본래의 우리글 『한자 (韓字)』가 그 피와 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모든 문자들을 일정한 규칙을 들어 일일이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목수의 곱자를 구(矩)라고 합니다. 아무리 재주가 출중한 목수라 하더라도, 휘거나 눈금이 일정치 않는 곱자로는, 의도한 바의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곱자를 완전하게 정비하는 것을 「혈구(絜矩)」라고 합니다. 이 책은 절대학문인 유학과 신들의 문자인 한글·한자를 바탕 삼은 것으로, 만 가지 학설과 이론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혈구에 해당합니다. 극강의 지식고수들을 길러낼 수 있는 측정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책을 반복해서 공부한다면, 악한 권력자들이 대를 이어 쌓아온 거짓과, 유구한 세월동안 덕지덕지 내려앉은 세월의 때까지 모두 벗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절된 역사와 분단된 국토를 다시 하나로 이어야 하는, 우리 한겨레의 사명도 완수할 수 있을 것이고, 종내 우리 모두가 그토록 염원했던 기울어짐이 없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서에 이르기를 “한 사람의 인(仁)이 나라 전체에 인을 일으키고, 한 사람의 어그러진 탐심이 나라에 난(亂)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혼란을 일소시킬 한겨레의 동량이 바로 여러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상달을 축원합니다.
≪ 간추린 창세역사 ≫
□ 발문拔文 거란(契丹) 땅에 있었던 대홍수와 방주(方舟)를 건조하여 그 위난을 극복해냈던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 천제께서 보령 사십에는 서역세계를 평정하셨으며, 그 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오십에는 옹(禺)·주(州)·거란 (契丹)·안파(安巴) 4군과 유 (酉)나라 정규군으로 구성된 천병들을 이끌고 동방세계로 진출 하셨습니다. 55세에 동방의 절반을 차지하여 새로운 하늘 천부「인내천 (人乃天)」을 열고 천제의 위에 등극하셨으며, 70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탄압해 오던 귀왕 곤숙의 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동방세계를 평정하셨습니다. 80에는 천부의「십간(十干)」들을 앞세워, 동방 육국과 서방 육국의 연맹(聯盟)을 완성하시니, 이 연맹체를 「십이지(十二支)」 또는 「12환(桓)」이라고 하며, 천제께서 이『12환(桓)』의 초대 대표로 취임하시니, 이른 바 「환인(桓因)」천제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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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數理)
「수리(數理)」라는 것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함축하고 있는 이치라는 의미로, 1~5까지를「생수(生數)」라 하고 6~10까지를「성수(成數)」라고 합니다. 천제께서 보령 59세에 이를 때까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셨다는 것을, 숫자 개념을 이입시켜「생수(生數)」라 하는 것이고, 보령 60부터 109세에 이르기까지 벌이신 일들을 모두 완성하셨다는 것을, 역시 숫자 개념을 이입시켜 「성수(成數)」라 고 하는 것입니다. 열 가지 숫자들을 한자(韓字)로 표기하면 「일(壹/一)·이(貳/二)·삼(參/三)·사(亖 /四)·오(乄/五)·육(六)·칠(七)·팔(八)·구(九)·십(拾/十)」이고, 그중 생수 모두와 성수 중 십자는 각각 두 글자씩입니다. 「일(一)·이(二)·삼(三)·사(亖)·오(乄)·십(十)」은 창세(創世) 철학인 천도(天道) 삼극 (三極) 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문자이고, 「일(壹)·이(貳)·삼(參)·사(四)·오(五)·육 (六)·칠(七)·팔(八)·구(九)·십(拾)」자는, 약 일백 년간의 창세역사 연표(年表)에 해당하는 문자입니다. 이하 간추린 창세역사는 수리의 순서대로 나열한 것입니다.
□ 십대十代 「壹(일)」은, 사(巳)나라의 수도「두(豆)」땅에 있었던, 그 「선비(先匕/士)」의 행위가 인간 세상에 널리 「회자(膾炙/冖)」되었다는 의미의 문자입니다. 나중에 천제께서 제대로 된 맞춤형 정사를 펼치기 위해, 각 나라들 사정을 정확하게 살피는 수단으로,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라는 특별한 분류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십간(十干)」이라는 것은, 무력과 억지로 약 65,000여 년간 세상을 지배해오던 검은 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동방에 세우신 새로 운 하늘 천부(天府) 인내천(人乃天) 연방 아홉 제후국과, 천제께서 직영하시던 중심국 진(辰)나라를 함께 이르는 것입니다. 「십이지(十二支)」라는 것은, 주변의 군소국 대 여 섯 씩을 식민지로 거느린, 당시의 동서 강대국 열 두 나라를 이르는 것입니다. 서기(西紀) 2,025년을 기준으로 하여 약 9,300년 전, 천제께서는 십이지(十二支) 중 여섯 번 째인「사(巳)」나라의 둘째 왕자로 태어나셨으며, 부왕은 옹(翁)이시고 백형은 귀왕 곤숙(㒭㑐)이며 형수는 음귀 신수(姺嫂)입니다. 비록 만물의 화육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시나,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세상 규칙을 좇음에 일절 어긋남이 없었고, 일찍부터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모두 자유롭게 경쟁하며 살 수 있는, 기울어짐이 없는 세상을 열어 주 실 요량으로, 큰 뜻을 세우시고 「사(巳)」나라의 내부 개혁을 주도할 세력을 규합 하셨습니다. 이때 내세우신 사상은 천도(天道) 삼극(三極)에 바탕을 둔, “사람이 곧 하늘이 다.”라는 『인내천(人乃天)』이었습니다. 상생의 도를 알지 못하는 무도한 무리들의 도발로, 사람들의 삶이 크게 위협받자, 이에 젊은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실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단(團)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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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임해서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검은 소 탈을 쓰고, 단원들에게도 똑같은 복장을 하게 하였는데, 그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이 특별한 단체의 명칭을, 「소떼들」이라는 의미의 「우조단(牛曹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제께서는 우조단의 수장이었던 까닭에, 소떼를 끌고 다닌다는 의미의 『견우(牽牛)』라 불리게 되었으며, 별칭으로는「신인(神人)」이라 하시니, 비록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절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원래 함자는「인(仁)」또는「일(日)」이시니, 인(仁)을 옷처럼 걸치고, 태양이 음지를 바꾸듯 세상을 밝게 바꾼 주체라는 의미입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우조단(牛曹團)이라는 신흥세력의 급부상과, 대장 견우(牽牛) 인(仁)의 확고한 세상 개혁 의지는, 부패한 권력자들의 두려움을 더욱 부채질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백형 곤숙(㒭㑐)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우조단과 대장을 제거해 우환을 없앨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형수 신수(姺嫂)가 기획한 정적 제거 계획에 따라, 기획된 서방세계와의 전쟁에, 신인께서는 우조단을 이끌고 선봉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때 앞에서는 아군의 선전을 독려하고, 뒤에서는 적국과 내통하여 아군을 팔아 넘기려는 저들의 음모로, 결국 신인께서는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으니, 십 대 후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 이십대二十代 「貳」는, 「금품(金品/貝)」으로 그 「나라(⚎)」 사람들을 매수하여, 「주살(誅 殺/弋)」했다는 의미의 문자입니다. 우조단(牛曹團)을 이끌고 선봉에 나섰던 신인께서, 동맹국의 배신으로 허름한 성에 고립된 채, 여러 날 농성(籠城)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적의 대군에 맞서 특유의 용맹함으로 근근이 하루하루 를 버텨냈지만, 보급이 차단됨으로 해서 결국 모든 전투력은 상실되었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본진에 몰래 보낸 전령조차도, 곤숙과 음귀 신수 사주를 받은 아군의 손에 희생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전투에 대한 두려움 보다 배고픔이 더욱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아사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젊은 병사들은 연명을 위해 무슨 행위든 해야만 했습니다. 전쟁터를 누비며 생사를 함께했던 애마(愛馬)를 잡아, 급한 대로 대원들의 허기를 달래주기는 하였으나, 이 역시 어려움을 잠깐 연장시킨 미봉책일 수밖에 없었고,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물에 빠진 웅덩이에서 잡은 자그 마한 생선 몇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본 병사들은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며, 정신 줄 놓은 부상병들의 울부짖는 처연한 소리로 미루어, 이제 전멸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심한 끝에 신인께서는 급식담당 병사들을 은밀히 불러, 피아를 구분하지 말고 시신의 살갗을 생선 형태로 발라내고, 부스러기는 전병(煎餠) 형태로 빚어 구운 뒤, 야밤을 기해 굶주린 병사들에게 먹일 것을 명하셨습니다. 또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약한 상처 부위를 소변으로 씻어 감염을 막고, 좋은 추억 이야기로 용기를 북돋워 주며, 들것 손잡이를 마주 잡고 부상병들을 옮기는 등, 서로를 의지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종내 심리전의 일환으로 적이 투입한, 어린 여군들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천하의 악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우조단의 신화는 결국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 |
적국의 포로가 되어서 전범의 죄를 뒤집어쓰고, 서역 유(酉)나라로 끌려온 신인께서는, 십이지(十二支) 중 두 번째 나라인 축(丑)나라 왕이 주도하고, 절름발이 망나니 올(兀)이 집행한 체벌로, 오른쪽 어깨가 꺾이고 양쪽 발뒤꿈치 인대가 모 두 잘려, 두 다리를 띠로 묶어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벌레처럼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 다녀야만 하는, 서역에서의 삶은 처연하기 그지 없었는데, 연명을 위해 쌀알처럼 생긴 벌레의 유충을 음식 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방편도 또한 여의치 않아서,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절체절명의 처지 에, 옹(禺)땅 문둥이들의 지도자 우옹(禹雍)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게 되었고, 불굴의 의지에 우(禹)와 그 장로들의 모사가 더해져,
유(酉)나라 공주 직녀(織女) 목(目)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마부 겸 선생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철학적 소양을 무기 삼아, 어린 공주의 춘심을 파고든 전략이 실효를 거두어, 사제의 정(情) 이외의 것으로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에 재기를 바라는 신인의 간절한 바람에, 제자 직녀(織女) 목(目)의 화끈한 조력이 더해져, 유(酉)나라 조당에 출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발군의 정치력을 드러내 보임으로 임금 전왕(佺王)의 신뢰를 얻어, 결국 결 혼과 함께 부마도위라는 지위와 삼남 삼녀를 덤으로 얻게 되었으니, 이십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