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삭天朔
≪ 간추린 천삭역사 ≫
□ 발문拔文 환인(桓因)의 위(位)가 2대 삼남 신농(神農) 면(丆)에서 3대 서자 제임(濟任), 그리고 그 아래로 7대까지 전해져 내려오다가, 세상이 천부의 통치 문화권 아래 완전히 들어오게 되자, 새삼스레 환인을 별도로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해 졌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근간인 십간 (十干)들이 더 이상 환인이라는 호칭을 내세우지 않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천부는 중앙정부 진(辰)과 경기(京 畿)로 나누어 다스리던 통치 체제를 일원화하고, 구간(九 干) 즉 「구환(九桓)」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환(九桓) 체제가 3,301년 간 유지되어 오다가, 천주의 정치 해이에 겹친 제후 요(堯)의 반란 등, 우여곡절 끝에 「배달(倍達)」『한(韓)』으로 이어졌습니다. 1,565년간 유지되어 오던 배달 한(韓) 체제가, 삼한(三韓)으로 분리되는 위기를 맞았다가, 다시 통일되어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으로 2,201년간(2,096?) 유지되었는데, 천부의 사가들은 한(韓)의 최고 지도자를 「환웅(桓雄)」으로, 조선(朝 鮮)의 최고 지도자를 「단군(檀君)」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천삭역사(天朔歷史)』를 단 한 문장으로 정의를 하면, 앞에 나열한 바처럼 약 7,000여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던 천부의 역사가, 어느 날 갑자기 인류사에서 완전히 삭제되어버린 사건을 이르는 것입니다. 즉 한수변의 오랑캐 「유철(劉徹)」과 「동중서(董仲舒)」가, 천부 고조선의 천주 단군(檀君)을 비롯한 종사자들을 시해해 사체를 유기하고, 조당 해체와 종묘(宗廟) 파훼 장서(藏書)들을 탈취하는 등의 반란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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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기 위해, 사마천(司馬遷) 허신(許愼) 장건(張騫) 등에게 사주하여, 절취한 역사서 사기(史記)의 왜곡과 기타 도서들의 분서(焚書), 한자(韓字)의 한자화(漢字化)와 한글(韓㐎)을 말살하는 등, 상식 이외의 일들을 자행하였습니다. 인류 7,000여 년의 문화와 역사를 모두 지워버린 대(對) 인류 사기사건이 바로 천삭(天朔)입니다. 임자년(壬子年/BC 128)부터 임신년(壬甲年/BC 108년)까지 20년간에 걸쳐 있었던 일이며, 구체적 사례로는 “주(周)가 기자를 조선에 파견하여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 또 “위만에게 정복당하여 위만조선(衛滿朝鮮)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등의, 꾸며낸 이야기들을 실제 역사처럼 끼워 넣기 함으로, 천부의 위상 폄훼를 기도하는 한 편, 자신들이 저지른 역천의 반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공인물 들을 역사에 끼워 넣어 물 타기를 하였습니다. 저들의 역사왜곡과 날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간교했습니다. 대를 이은 천부의 역사를 신화화하여 사기(史記)에 남기도록 한 후, 다시 날조된 관련 거짓정보들을 별도로 남기고, 또 천부의 역년(歷年)과 관련 인물들의 생몰 연대를 조작하는 것으로, 후인들이 진실에 대해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치밀했던 저들의 음모가 『천삭(天朔)』이라는 역사로 후대에 전해지 게 된 까닭은, 오히려 저들의 지나친 간교함 때문이었습니다. 천부의 역사는 천부의 사관들로 하여금 왜곡하게 한다는 간적 동중서의 신념에 따 라,「반표(班彪)」와 두 자녀「반고(班固)」「반소(班召)」와 같은, 천부의 사관들을 고용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날조의 전체 기획자 동중서는 자신의 무도함을 감추기 위해, 천부의 사가들을 억압하여 필진으로 활용하는 방편을 주로 사용했는데, 역사 왜곡은 사마천(司馬遷)과 반표(班彪) 반고(班固) 부자에게, 문자 왜곡은 허신(許愼)과 반소(班召)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천사장(天使長) 반표는 사마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 사기(史記)후 서를 썼고, 반고는 아버지 반표의 뒤를 이어 한서(漢書)를 써서 진실을 전하려 했으며, 반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로부터 전해들은 것과 자신이 직접 수집한 정보들 취합한 후, 관련 문자들에 별도의 훈과 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옥편에 남겼던 것입 니다. 후 반표와 두 남매는 동중서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진실을 전하고자 한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천삭역사는 천부의 사가들이 몸을 바쳐 남긴 피의 절규인 것입니다.
□ 천기天氣
❶ 조짐(兆朕) 임금에 대한 충(忠)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스승에 대한 의(義)와, 내 생명의 근원인 부모에 대한 효(孝)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천륜의 질서입니다. 천부 조선(朝鮮)은 아홉 제후가 단(檀) 천주를 중심으 로 협치를 하는 봉건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말기 에 이르러서는 두 제후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 천주 단(檀)을 노골적으로 업신여긴 것이 나쁜 선례가 되어, 사회 곳곳에는 불충·불의·불효가 팽배했으며, 결국 그 무도함이 화를 불러 하늘의 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 었던 것입니다. ❷ 상전벽해(桑田碧海) 대홍수에 겹친 지진 해일로 천부의 강역 대다수가 물에 잠겼으며, 천부의 사가들은 당시의 상황을 「상전벽 해(桑田碧海)」로 기록했는데, “누에에게 있어 삶의 전부인 뽕나무처럼,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안정적인 먹거리와 주거 등의 편의 전반을 제공해 오던, 천부 조선 (朝鮮)의 강역 전체가 물에 잠겨 푸른 바다처럼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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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천주(天主) 고열가(古列加) 고기(古記)에는, 배달(倍達) 한(韓)의 초대 환웅(桓雄)을 「거발환(居發桓)」이라 하였는데, “두 세력의 충돌로 시체가 산을 이뤄 천부가 마치 무덤처럼 되었으며, 와중에 그가 승 리하여 환(桓)의 맥을 잇게 되었다.”는 의미입니 다. 또 마지막 18세 환웅을 「거불단(居弗檀)」이라 하 였는데, “시체가 산을 이루는 상호 충돌의 결말이 있었으며, 환웅 천주의 옥체가 검에 의한 상해를 입어, 결국 단(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의 미입니다. 또 조선(朝鮮)의 초대 단군(檀君)을 「왕검(王儉)」이라 하였는데, “천주 거불단(居弗檀)을 보좌하던 비왕이, 마치 도리깨로 타작을 하듯 일시에 천부의 혼란을 정돈한 공으로, 삼극(三極)의 도(道)를 수호하는 새로운 천주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입 니다. 그리고 마지막 47세 단군을 『고열가(古列加)』라고 하였는데, “나라가 망해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옛날처럼 되었으며, 뼈와 살이 분리되는 환란이 천주의 옥체에 더해졌다.”는 의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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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使漢
❶ 유철(劉徹)
「劉(유)」는, “임금을 칼로 위협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미의 문자입니 다. 「徹(철)」은, “서역이 길러낸 세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결국 단(檀) 천주「고열 가(古列加)」를 시해하고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범인이, 서역이 심어놓은 첩자 유철(劉徹)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단(檀) 천주의 명을 받은「천사(天使)」『유철(劉徹)』이, 한 수변을 근거지로 하여 고만고만 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탄(嘆)지역에 「기자(箕子)」로 파견되어, 치수를 비롯한 대소사를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천사(天使)」라는 것은, 천부의 사관이라는 의미이고, 「기자(箕子)」라는 것은,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의 정사를 돕고자, 천부가 일찍부터 각 나라에 파견해오던 선생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근래에 천부 진한(辰韓)의 강역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 호우로, 여러 차례 강하의 범람이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한수(漢水)와 장강(長江) 유역의 치수를 전담해 오던 유철이 호출되어, 그의 병사들과 함께 천부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엄청난 대홍수의 환란이 닥쳤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환란에 직면한 단(檀) 천주께서, 천사 유철을 불러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치수에 관한 많은 지식과 구난에 숙련된 다수의 병력을 이끌고 온 유철을 신뢰하여, 결국 재난 수습과 구휼의 전권을 위임하게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수몰로 빈손이 된 비무장의 천부 병사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와중에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두 제후의 다툼은, 차마 봐 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앞에 움츠린 천주 단군(檀君)의 위상은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때 가장 시급하게 행해져야 할 일이, 천부의 서고에 보장되어 있던 장서들을 안 전지대로 옮기는 일이었고, 따라서 대다수의 책들이 유철의 거점인 탄(嘆)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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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동중서(董仲舒)
「동(董)」은, “혼란 중에 매우 엄중한 일을 맡게 되었으며, 그의 주관 하에 천부의 강역을 비롯한 세상 땅들이, 완전히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중(仲)」은, “그가 유철을 보좌하던 2인자였다.”는 것입니다. 「서(舒)」는, “면면히 이어져 오던 천부의 역사를 모두 흩어버리고, 짐짓 편안한양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는 의미로, 결국 동중서는 역천의 반란을 저지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흉을 떠는 매우 저속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역사서 「사기(史記)」 와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옥편(玉篇)」 등, 사실상 천부의 문화 전부를 수중에 넣게 된 유철은, 꿈틀대는 검은 욕망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서역이 길러 동방 천부에 심어놓은 첩자였지만, 작금은 한수와 장강유역에 파견되어, 그곳 사람들을 다스리는 기자(箕子)였기에, 그곳을 보다 발전시키 고, 나아가 완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기여한, 최고의 지도자로 기림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탄(嘆)지역의 현실은,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할 수단이 없는 문맹지대 였고, 사물을 그림형태로 표현하는 원시문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확연히 대비되는 천부의 문자문화와 역사가 그토록 탐이 났던 것입니다. 이때 유철의 측근 중 동중서라는 매우 간특한 자가 있어, 그의 음흉한 흉중을 미리 헤아리고 역천(逆天)을 부추겼는데, 이에 유철은 짐짓 아닌 양 겉으로는 손 사례를 치고 있었지만, 탐욕으로 얼룩진 그 속내를 휘번뜩이는 두 눈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끄덕이는 유철의 턱 끝을 신호로 동중서의 밀행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숱한 천부의 요인들이 구휼대로 믿었던 유철의 병사들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검붉은 피는 범람하는 황톳물에 섞여 구분되지 않았고, 살해당한 시신의 대다수는 수재를 당한 다 른 사체들과 함께 바다로 떠내려갔습니다. 대소신료들의 실종 등 의혹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으나, 황망한 중이라 누구하나 나서서 점검하는 사람이 없었고, 와중에 고지대로 몽진했던 단(檀)천주와 두 제후 역시 함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 |
이때 사건을 목도한 대다수 사람들 역시 죽임을 당했으나, 천사장「반표(班彪)」와「반고(班固)」「반소(班召)」두 남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도구로 활용한다는 동중서의 음흉한 계획에 따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후일 『한서(漢書)』를 지어, 이때의 일을 사실 그대로 후대에 전한 반고(班固)는, 동중서의 음흉함에 대해 「삼천갑자(三千甲子)」「동방삭(東方朔)」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삼천갑자(三千甲子)」는, 3,300여 년 간 이어져 오던 「환(桓)」의 역사를 이르는 것입니다. 「동방삭(東方朔)」은, 동중서가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오던 동방의 역사를 모두 삭제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단(檀) 천주의 존함을 “나라의 패망과 함께 천주의 옥체가 칼로 해체되는 가혹함이 더해졌다.”는 의미의 「고열가(古列加)」라고 기록하고, 관련 문자마다 별도의 자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천의 범법자들이 이름으로 사용한 문자에도, 저들의 구체적 범범 사실들을 별도의 자의(字意)로 덧붙여서, 반란사건의 전모에 대해 단서를 남겼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