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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역사(創世歷史)


    거란(契丹땅에 있었던 대홍수와 방주(方舟)를 건조하여 그 위난을 극복해냈던 사건을 계기로완전히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 천제께서 보령 사십에는 서역세계를 평정하셨으며그 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오십에는 ((거란(契丹안파(安巴) 4군과 유()나라 정규군으로 구성된 천병들을 이끌고 동방세계로 진출하셨습니다.


    55세에 동방의 절반을 차지하여 새로운 하늘 천부인내천(人乃天)을 열고 천제의 위에 등극하셨으며, 70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탄압해 오던 귀왕 곤숙의 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동방세계를 

    평정하셨습니다80에는 천부의십간(十干)들을 앞세워동방 육국과 서방 육국의 연맹(聯盟)을 완성하시니이 연맹체를십이지(十二支)또는12()이라고 하며천제께서 이12()의 

    초대 대표로 취임하시니 이른바환인(桓因)천제라고 합니다.


    수리(數理)

    수리(數理)라는 것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함축하고 있는 이치라는 의미로, 1~5까지를 생수(生數)라 하고 6~10까지를성수(成數)라고 합니다.

    천제께서 보령 59세에 이를 때까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셨다는 것을, 숫자 개념을 이입시켜 생수(生數)라 하는 것이고, 보령 60부터 109세에 이르기까지 벌이신 일들을 모두 완성하셨다는 것을, 역시 

    숫자 개념을 이입시켜 성수(成數)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 가지 숫자들을 한자(韓字)로 표기하면 (/(/(/(/(/(((((/)이고, 그중 생수 모두와 성수 중 십자는 각각 두 글자씩입니다.

    (((((()은 창세(創世) 철학인 천도(天道) 삼극(三極) 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문자이고, (((((((((()자는 

    약 일백 년간의 창세역사 연표(年表)에 해당하는 문자입니다이하 간추린 창세역사는 수리의 순서대로 나열한 것입니다.


    창세역사(創世歷史)


    《 1, 십대(十代

       나중에 천제께서 제대로 된 맞춤형 정사를 펼치기 위해, 각 나라들 사정을 정확하게 살피는 수단으로,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라는 특별한 분류법을 사용하셨는데,

    십간(十干), 무력과 억지로 약 65,000여 년간 세상을 지배해오던 검은 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동방에 세우신 새로운 하늘 천부(天府) 인내천(人乃天) 연방 아홉 제후국과, 천제께서 직영하시던 

      중심국 진()나라를 함께 이르는 것이고,십이지(十二支), 주변의 군소국 대 여섯 씩을 식민지로 거느린, 당시의 동서 강대국 열두 나라를 이르는 것입니다.


      약 9,300년 전 천제께서는 십이지(十二支) 중 여섯 번 째인 ()나라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셨으며, 부왕은 옹()이시고 백형은 귀왕 곤숙(㒭㑐)이며 형수는 음귀 신수(姺嫂)입니다.

      비록 만물의 화육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시나,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세상 규칙을 좇음에 일절 어긋남이 없었고, 일찍부터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기울어짐이 없는 세상을 열어 주실 요량으로 

      큰 뜻을 세우시고, ()나라의 내부 개혁을 주도할 세력을 규합하셨는데, 이때 내세우신 사상은 천도(天道) 삼극(三極)에 바탕을 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이었습니다.


      상생의 도를 알지 못하는 무도한 무리들의 도발로, 사람들의 삶이 크게 위협받자, 이에 젊은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실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단()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전투에 임해서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검은 소 탈을 쓰고, 단원들에게도 똑같은 복장을 하게 하였는데, 그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이 이 특별한 단체의 명칭을, 소떼들이라는 의미의 우조단(牛曹團)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제께서는 우조단의 수장이었던 까닭에, 소떼를 끌고 다닌다는 의미의 견우(牽牛)라 불리시게 되었으며, 별칭으로는 신인(神人)이라 하시니, 비록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절대자이시기 때문이고

     원래 함자는 ()또는 ()이시니, ()을 옷처럼 걸치시고, 태양이 음지를 바꾸듯 세상을 밝게 바꾼 주체라는 의미입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더욱 확고해진 동생의 세상 개혁 의지와, 우조단(牛曹團)이라는 신흥세력의 급부상을 두려워한, 백형 곤숙(㒭㑐)과 형수 신수(姺嫂)의 정적 제거 계획에 따라, 기획된 서방세계와의 전쟁에 

     신인께서는 우조단을 이끌고 선봉을 맡게 되었습니다이때 전면에서는 아군의 선전을 독려하고, 뒤에서는 적국과 내통하여 아군을 팔아넘기려는 저들의 음모로, 결국 신인께서는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으니

     십 대 후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 이십대(二十代

     우조단을 이끌고 선봉에 나섰던 신인께서, 동맹국의 배신으로 허름한 성에 고립된 채 여러 날 농성(籠城)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적의 대군에 맞서 특유의 용맹함으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냈지만, 보급이 차단됨으로 해서 결국 모든 전투력은 상실되었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본진에 몰래 보낸 전령조차도, 도리어 음귀의 사주를 받은 아군의 손에 

     희생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전투에 대한 두려움 보다 배고픔이 더욱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아사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젊은 병사들은 연명을 위해 무슨 행위든 해야만 했습니다.

     전쟁터를 누비며 생사를 함께했던 애마를 잡아, 급한 대로 대원들의 허기를 달래주기는 하였으나, 이 역시 어려움을 잠깐 연장시킨 미봉책일 수밖에 없었고,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물 빠진 웅덩이에서 잡은 자그마한 생선 

     몇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본 병사들은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며, 정신 줄 놓은 부상병들의 울부짖는 처연한 소리로 미루어, 이제 전멸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고심한 끝에 신인께서는 급식담당 병사를 은밀히 불러, 피아를 구분하지 말고 시신의 살점을 생선 형태로 발라내어 구운 뒤, 야밤을 기해 굶주린 병사들에게 먹일 것을 명하셨습니다.


     또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약한 상처 부위를 소변으로 씻어 감염을 막고, 들것 손잡이를 마주 잡고 부상병들을 옮기며 서로를 의지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나, 종내 심리전의 일환으로 적이 투입한, 어린 여군들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우조단의 신화는 결국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전범의 죄를 뒤집어쓰고 적국의 포로가 되어 서역 유()나라로 끌려온 신인께서는, 십이지(十二支) 중 두 번째 나라인 축()나라 왕이 주도하고, 절름발이 망나니 올()이 집행한 체벌로 오른쪽 어깨가 꺾이고 양쪽 발뒤꿈치 

     인대가 모두 잘려, 두 다리를 띠로 묶어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벌레처럼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 다녀야만 하는 서역에서의 삶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는데, 연명을 위해 쌀알처럼 생긴 벌레의 유충을 음식 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방편도 또한 여의치 않아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절체절명의 처지에서, ()땅 문둥이들의 지도자 우옹(禹雍)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게 되었고, 불굴의 의지에 우()와 그 장로들의 모사가 더해져 유()나라 공주 

     직녀(織女) ()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마부 겸 선생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철학적 소양을 무기 삼아, 어린 공주의 춘심을 파고든 전략이 실효를 거두어, 사제의 정 이외의 것으로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에 간절한 바람에 제자 직녀(織女) ()의 조력이 더해져, ()나라 조당에 출사하게 되었으며, 이때 발군의 정치력을 드러내 보임으로 임금 전왕(佺王)의 신뢰를 얻어, 결국 결혼과 함께 부마도위라는 지위와 삼남 삼녀를 

     덤으로 얻게 되었으니, 이십대의 일입니다.

     

    삼십대(三十代)

     천도(天道) 삼극(三極)에 근거한 신법을 제정·반포하여 사회 구석구석을 정비하고, 권력자들이 독점해오던 유통체제에 일대 변혁을 꽤하여,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장마당을 열고 자유롭게 거래하게 하는 등, 서민들을 위한 정치로 

     나라 안 곳곳을 백성들의 칭송으로 넘쳐나게 하였습니다.


     바름을 지향하는 신인의 급부상으로, 그간 국정을 농단해 오던 부패한 권력자들은 기반 대다수를 잃게 되었으며, 인하여 신인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와는 달리 저들의 증오는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 아내 직녀(織女) ()의 변절로 또 다른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는데,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성정과, 젊고 아름다움 위에 쏟아진 큰 권력이 오히려 장애로 작용하여, 타락과 방종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권력 회복만 바랄 뿐, 가릴 것 없는 저들의 도발에 젊은 공주는 속절없이 무너졌으며, 급기야 자신의 권력 기반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변절하여 적들의 계획에 동조함으로, 결국 신인께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변방의 식민지인 거란(契丹)땅 관리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들딸의 주청을 전폭 수용한 전왕(佺王)의 결정으로, 신인께서는 사실상 본국 유()나라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은 모두 잃게 되었지만, 거란(契丹)땅에서 옹()땅의 우옹(禹雍)과 같은 또 한 사람의 결정적인 조력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의 지도자 새옹(塞壅)입니다불구인데다 비록 실각을 하고 쫓겨 온 신세였지만, 신인의 초월적 능력을 한눈에 알아본 새옹(塞壅), 마치 고향땅의 아버지 ()처럼 따뜻하게 대해줬다 하여, 변방의 또 다른 

    아버지라는 의미의 새옹(塞壅)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길 대홍수의 재앙을 예견하시고, 지도자 새옹(塞壅)과 함께 방주(方舟) 건설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난주(蘭舟)를 서로 연결하는 비교적 간편한 조선(造船) 방식으로, 다행히 홍수에 앞서 방주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닥친 대홍수의 환란으로부터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냄으로, 세상 사람들의 신뢰와 새옹(塞壅)의 딸 

    천영(奷佞)을 또 다른 조력자로 얻는 큰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인을 내쫓았던 본국 유()나라 조당의 관리들은, 이와 같은 일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업적이 낭중(囊中)의 송곳처럼 워낙 두드러져 알려짐으로, 신인께서는 다시 유()나라 조당으로 영전하시게 되었습니다.

    임금 전왕(佺王)의 전폭적인 지지로 다시 개혁의 칼자루를 움켜잡게 된 신인께서는, 왕자들을 비롯한 구 권력자들의 단호한 단죄를 피력하였으나, 임금 전왕(佺王)의 의지 부족으로 실천되지 못했으며, 언뜻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듯했지만, 신구 세력들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신인의 개혁을 저지하고자 한 저들의 암계(暗計), 임금 전왕(佺王)이 서거하는 국상(國喪)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개혁의 칼자루를 잡고 있던 신인께서는, 전왕(佺王)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해 조사하여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내친김에 아내 직녀(織女) ()을 제위(帝位)에 올리는 것으로 정국의 안정을 꽤하였습니다.


    아내를 앞세운 국정 장악과, 저들에 대한 철저한 견제로 얼마간의 평화는 유지되었으나, 정말 뜻하지 않던 임금 여제(女帝) ()의 일탈로 인해, ()나라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는데,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본능을 자극한 저들의 집요한 도발이 또다시 실효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인의 원초적 본능을 약점으로 잡은 무도한 자들의 어그러진 획책과,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 여제(女帝) ()의 부도덕이, 또다시 신인(神人)을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내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시 쫓겨나게 됨으로, 이젠 여섯 아이들의 목숨조차도 담보할 수 없게 된 신인께서는, ()땅의 지도자 할옹(舝瓮)과 그의 아들 순()을 은밀하게 만나, 저들의 모반에 대비하여 아이들과 아내의 목숨을 구할 구체적 지시를 내리시는 한편, 다시 옹()땅의 우()와 거란(契丹)땅의 천영(奷佞)에게도 유사시의 군사적 조력을 당부한 뒤, 짐짓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양 유유자적 동토의 안파(安巴)땅으로 떠나셨습니다.


    정의와 박애의 실천을 앞세운 곧음으로, 신인께서는 안파(安巴)땅의 지도자 한옹(寒邕)과 그곳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으며, 한옹(寒邕) 또한 우옹(禹雍)이나 새옹(塞壅)과 마찬가지로, 고향땅의 아버지 옹()처럼 자신을 보살펴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 하여, 한옹(寒邕)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인께서 예측하신 바대로 저들이 정변을 일으켰고, ()과 특공대의 놀라운 전투력에 힘입어, 여제(女帝) ()과 여섯 아이들은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으며, 정변 소식을 접한 신인께서는 한옹(寒邕)이 내준 

    안파(安巴)의 정규군을 이끌고 돌아와, 할옹(舝瓮)과 우옹(禹雍) 새옹(塞壅)의 병사들로 연합군을 결성하고,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반란군을 격파한 후, 주동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처단함으로, 사실상 유()나라의 모든 권력은 

    다시 신인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유()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신인께서 임금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주기를 바랐고, 또한 신인께서도 이미 유()나라 육국(六國) 연방 중 옹(거란(契丹), (안파(安巴)의 사군(四軍)을 수족처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의 자리로 나아가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습니다그러나 신인께서는 오히려 폐주(廢主) 여제(女帝) ()을 다시 임금으로 옹립하고, 스스로는 마부의 길을 택하셨으니, 바른 군신(君臣)의 도로써 치정(治政)의 질서를 세우신 것이며, 더욱 많은 일을 하시기 위해 황금마차의 주인자리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 사십대(四十代

    일찍이 있었던 옹()땅 우옹(禹雍)과 주()땅 할()과의 인연과, 아내 직녀(織女) ()의 거듭 배신으로 맺게 된 거란(契丹)땅 새옹(塞壅), 안파(安巴)땅 한옹(寒邕)과의 인연이, ()나라 정치권력 전체를 수중에 넣는 

    복으로 귀결되었지만, 관민의 소양 부족과 나라 안 인재의 부재, 그리고 그에 기인한 정책의 공회전으로, 막후 최고 책임자인 신인께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에 가깝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신동 려()를 포함한 동방의 선비들을 영입하는 것으로, 인재 부재에 따른 번민을 일부 해소하시고, 도량형과 같은 상용제도들을 정비하는 것으로, 거래의 편의를 도우셨으며, 오직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위한 정책의 

    실천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밝히셨습니다.


    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양성하시고, 나라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각국의 언어를 가르치게 하셨으며, 특히 나라마다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가 서로 달라 발생하는 불통 문제를 일소시키기 위해, 당대의 역사를 근본으로 한 두 문자 진서(眞書)한글(韓㐎)창제에 더욱 박차를 가하셨습니다.


    체계적 관리에 따른 생산증대로, 서민들의 삶이 한결 편안해졌고, 아울러 넉넉해진 국고를 열어 군에 집중 투자함으로, 신무기와 효율적 운용 체제를 갖춘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사십 후반에 이르러서는, 막강한 군세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신인의 힘이, 동방의 패자인 귀왕 곤숙(㒭㑐)과 음귀 신수(姺嫂)를 비롯한 구 권력자들을 모두 몰아내고, 그곳 사람들을 해방시키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 오십대(五十代

    보령 오십에 이르러 옹((거란(契丹안파(安巴) 사군과, ()나라 정예병들로 연합군을 결성하고, 마침내 동방으로 진출하시게 되었는데, 저들의 압제로부터 그곳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기울어짐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었습니다.


    장남 궐()을 총사령관으로 국사 려()를 군사로 삼고, 아내 여제 목()의 배후 지원을 받아 진행된 동방세계 진출은 매우 시의 적절하였으며, 인하여 해방을 바라는 많은 동방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묘()나라 인근 토호세력의 총지도자로, 주변의 존경을 받아오던 채옹(寨饔)과 같은 덕망 있는 사람들이, 연합군을 하늘이 응답해서 보내준 천병(天兵)으로 여기고, 최고 통수권자인 신인 견우 인(), 새로운 세상을 

    선물할 천제(天帝)로 인정하여 귀의해 왔을 뿐만 아니라, 앞장서서 구 권력자들을 섬기던 군소 식민국가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천제의 혁명에 동참하도록 권면하는 데 직접 나서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덕 있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큰 정서적 반전을 이끌어, 낮에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 권력자들을 섬기는 척하더라도, 눈치를 보아 밤에는 천병들을 우군으로 맞아, 함께 악의 무리들에 대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서전에 있었던 총사령관 궐()의 왼팔을 잃은 부상은, 천병들에게 있어 엄청난 전력 손실이기도 했지만, 초입인 묘()나라에 남아 천병들의 배후와 보급선을 지키고, 인재들을 양성하여 본진에 투입하는 등, 교두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함으로, 해방 전쟁이 점차 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 권력자들의 기반이 반으로 줄어들고, ()나라를 거점으로 한 절반의 강역이 천제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중심도시 경()을 수도로 하여, 그간 장남 궐()이 바탕 삼아 인재를 양성했던 유학(儒學)을 국시로 삼고, ()을 동방 청제(靑帝)의 위에 세우는 것을 필두로, 팔방에 천왕들을 세워 십간(十干)의 형태를 모두 

    갖추시니, 바로 천부(天府) 인내천(人乃天)입니다.


    이때 아리따운 여인 시녀 신첩(臣妾) ()를 후궁으로 맞아, 서자 제임(濟任)을 얻는 경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단문으로 설명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 건설의 이상이 실제 실현된, 이 땅의 새로운 하늘 선천(先天) 개벽을 이르는 것이고

    서자 제임(濟任), 장차 선·후천(·後天)을 통합해 기울어짐이 없는 완전한 세상 인황천(人黃天)을 세워, 세세토록 성군으로 기림을 받는 태황제(太皇帝)를 이르는 것입니다.


    이즈음 하여 서역 유()나라에 두고 온 삼남 면()이 서()와 옥()을 대동하고, 동서 직선로를 개척하여 동방의 천부로 아버지 인()을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이 직선로를, 나중에 천부의 팔대 천왕 중 남방의 수호신 직을 

    제수 받아 적제(赤帝)로 불리게 된, ()의 제위(帝位) 명칭을 좇아 적도(赤道)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이때 천제께서는 삼남 면()의 지리(地理)에 대한 이해 능력을 높이 사, 세계를 돌며 지리와 만물에 대해 모두 격물(格物)하여 돌아올 것을 명하셨습니다.


    중리(媑娌) ()을 연구 책임자로, ()를 경호 대장 사위(四衛)로 삼고, 여단(旅團) 병력을 거느린 국사(國師) ()의 측면 지원을 받아, 세상 곳곳을 리() 단위로 세분화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오랜 여정에 있어, 병사들을 둘로 나누어 치고 빠지고 다시 치는 전술을 운용함으로, 경유지 군소 부족들을 모두 복속(服屬)시킨 국사 려()와 여단(旅團)의 공적은, 후 동방세계 통일 대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 제 때 씻지 못해 까마귀 떼로 폄훼되는 등, 갖은 고생을 다하며 이룩한 중리(媑娌) ()과 삼남 면()의 연구는, 나중에 인류 최대 경전(經典)인 옥편(玉篇)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중리(媑娌) ()은 삼남 면()의 마음을 얻어 결혼함으로, 공주 요정(妖婷)과 왕자 동()을 낳았고, 국사 려()는 차녀 교룡(蛟龍) 매희(妹姬)와 결혼하였으며, 사위(四衛) ()는 장녀 시장(市長) 자용(姊㛚)과 혼인함으로 

    천부(天府)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습니다연구단의 최고 책임자인 삼남 면(), 연구를 완성하고 무사히 귀환한 공을 인정받아, 보상으로 천부(天府) 남방의 수호신 적제(赤帝)의 위()를 제수 받아 오()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습지에 자생하는 벼를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농사법을 완성하여, 인류의 먹거리 고민을 일소시킨 엄청난 공적을 이룸으로 신농(神農)으로 기림을 받게 되었고, 지구를 리() 단위로 세분화하여 세세히 연구한 자료를 아버지 

    ()께 바침으로, 또다시 지신(地神)으로 기림을 받게 되었습니다명성에 편승하여 세계 각처를 돌며 맺었던 인맥을 활용한 교역을 통해, 나라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부자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천제께서는, 천부의 정·간방을 수호하는 팔대 천왕 모두에게, 앞뒤를 유리구슬로 장식한 면류관(冕旒冠)을 하사하시어 쓰게 하셨는데, 이는 찰랑거리는 맑은 유리구슬을 볼 때마다, 선천(先天) 개벽이 있기까지 목숨을 바친 

    수많은 열사들의 눈망울을 연상하게 함으로,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군주(君主)의 방종을 미리 다스리신 것입니다이는, 부패한 구 권력자들과 동방의 영토 절반씩을 나눠, 서로 대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정을 

    독려한 오십대 천제(天帝) 견우(牽牛) ()의 정치 성향이 확연히 드러난 예입니다.

     

    〈 육십대(六十代

    정치·종교·법으로 구체화된 천제의 세상 교화 업적이, 보령 육십에 이르러 더욱 뚜렷해졌는데, 생태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비·구름·바람처럼, 사람들의 삶에 크나큰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때 유불선도(儒佛禪道)라는 사대 학문도 발원하였습니다.


    천제께서는 장남 청제 궐()에 의해 완성된 유학(儒學)버드나무 류()자로 표현하시고, 다시 별자리의 이름모이다라는 별도의 자의(字意)를 부여하셨는데, 이는 유학을 나무에 비유하면 버드나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버드나무 수액을 음용하면 장내의 유해세균수가 줄어들고,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장수하게 하는 등, 우수한 약재로써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즉 동방 사회의 갖은 병폐를 일소시킨 유학의 공능을 버드나무에 비유해서 

    밝히신 것입니다또 숱한 별들이 자리하는 별자리의 이름이라고 하시어, 묘나라가 천제께서 거하시는 진()의 수도 경()에 버금가는 천부의 중심임을 밝히셨고, 입신양명과 안락한 삶을 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는 것을, 모이다라는 자의로 설명하셨습니다.


    일찍이 천제께서는 서역 유()나라를 떠나 동방으로 진출하실 때, ()에 밝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선생 기자(箕子)를 조력자로 남겨, 아내 직녀 목()의 부족한 정치적 소양을 채워주셨습니다. 이 정치적 배려가 큰 실효를 

    거두자, 후 천제께서는 제도화하여, 나라마다 기자들을 파견하는 것으로 세상의 안정을 꽤하셨습니다.


    선천(先天) 개벽과 함께 동방세계가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되자, 해마다 칠월이면 아내 직녀 목()을 불러 칠 주야를 함께하는 여유를 즐기셨는데, “칠월에 일곱 날 저녁을 두 분께서 함께 하셨다.”하여 칠월칠석이라고 합니다.

    직녀 목()께서 동방으로 행차하실 때, 삼남 면()과 며느리 옥()이 개척한 적도(赤道)를 따라 행렬이 길게 이어졌기 때문에, 삼남 면()과 며느리의 별칭인 까마귀와 까치로 미루어, 두 짐승이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하여 해마다 칠월에 이루어지는 두 분의 만남을, 후세 사람들이 까마귀와 까치의 효행으로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 신구 양진영의 대치 국면이 그렇게 지속되었으며,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잠시간의 평안을 깨뜨리는 돌발 상황이 서역에서 발생하였는데, ()나라 임금 여제 목()의 정신적 해이가 빚어낸, 지나친 음주와 마약류의 상습 

    복용, 그리고 그에 따른 성적문란과 타락정도가 실혼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는 이미 천제께서 배려로 남겨 놓으신, 선생 기자(箕子)의 간청조차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고, 일상화된 타락으로 인한 당당하지 못함을 높은 목소리로 감추려 하니, 치졸함이 오히려 첨탑의 끝처럼 뾰족하게 두드러졌습니다.

    날마다 연회로 시끌시끌한 궁전 안의 밝은 불빛은 아침 조회 때까지 밝혀져 있어, 여제 목()의 부패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인하여 심각한 민심이반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입으로부터 시작된 혁명 요구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어, 대소신료들의 가세를 부추겼고, 시일이 지남에 따라 바깥에서는 혁명 방안이 구체화되어가는 데도, 여제와 함께 일탈을 즐기는 정신없는 자들은 전혀 대비가 

    없었습니다그 혁명의 구체적 방안은, 입 무겁고 발 빠른 전령에 의해 동서 경계지역 시()나라에까지 전달되었는데, 당시 시나라는 천제의 차남 야()가 백제(白帝)의 위를 제수 받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계획을 전해들은 차남 백제(白帝) (), 속히 모국을 안정시킬 요량으로 혁명군을 지휘하게 되었는데, 반듯함을 지향하는 곧은 성정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충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자간의 정리를 뒤로 하고 그렇게 혁명이 진행되었습니다지도자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함이니, 모든 지도자들은 물욕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신선사상을 정립하여 혁명의 기치로 삼고, ()나라 군사들을 맞아주는

    ()나라 동조세력과 함께, 어머니 직녀 목()을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장남 청제 궐()에 의해 반란으로 규정되었는데, 이후 백제(白帝) ()는 어머니의 제위를 찬탈하는 패륜(悖倫)을 저질렀다 하여, 더 이상 서방의 수호신 백제로 불리지 못한고, 굽은 임금이라는 의미의 제을(帝乙)과 폄훼의 대명사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제을(帝乙) ()의 패륜행위를 간과할 수 없었던 동방 천부의 맏이인 청제 궐(), 아버지 인()께 이 사실을 고하고 제후들의 회의를 통하여 응징을 결정한 후, 제후국들의 군사들로 연합군을 결성하고, 서방 세계와 또다시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연합군이 쉽사리 서역 정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동방은 귀왕 곤숙(㒭㑐)과 부패한 구 권력자들이 여전히 동방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여, 천부의 전도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주력부대가 서역으로 떠나고 나면, 천부가 텅 비어 안보를 담보할 수 없었던 까닭에, 귀왕 곤숙(㒭㑐)의 병사들을 함께 데리고 떠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고, 이에 서방세계를 정벌했을 경우 일정한 영토로 보답할 것 등을 약속하고, 적들을 전쟁에 동참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방의 압도적 군세에 밀려 서역 연합군이 폐퇴하게 되었으며, 수습 국면에서 청제 궐()의 천부 세력과 귀왕 곤숙(㒭㑐)의 구세력들 간에 심한 마찰이 있었는데, 애초부터 귀왕 곤숙(㒭㑐)은 천부를 와해시킨다는, 또 다른 목적을 

    숨기고 참전한 것이기 때문에, 이간책으로 동방 천부에 대한 서역 사람들의 적대감을 고조시킬 요량으로, 천부 사람들로 가장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과 살상을 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인하여 무차별적으로 서역 사람들을 죽이려는 귀왕 곤숙(㒭㑐)의 병사들과, 저들을 저지하기 위한 천부 병사들 간의 암투가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국면 중에 한 동안 서역의 최고 통수권자였던 제을(帝乙) (), 제위를 내려놓고 추종하던 시()나라 군사들과 유()나라 일단의 무리들을 이끌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도망자의 길에 올랐으며, 전쟁의 중심지였던 유()나라는 동방 천부의 영토로 귀속되어, 이때부터 ()나라또는 ()나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패륜의 제왕으로 낙인찍힌 도망자의 길은 혹독했지만, 지옥과 극락이라는 극단의 내세관과, 윤회라는 이론을 앞세워 무리들의 결속을 독려하는 한편,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임금인 동생 적제 면()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재기를 꾀하였으나, 그 역시 여의치 않았습니다설상가상으로 귀왕 곤숙(㒭㑐)의 무리들이, 이때를 기회 삼아 천부의 세력을 약화시킬 요량으로 집요하게 공격을 해대니, 인하여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것과, 어머니의 제위를 찬탈한 패륜이 무거운 업()이 되어, 이어진 삶이 곤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동반된 정신적 성숙은, 마름해오던 신선사상을 더욱 발전시키는 반대급부로 작용하였습니다자신만의 독창적 사상을 아버지 인()의 역()에 더하여, 새로운 책으로 완성시키는 개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새로운 사상의 태동이 절대 왕권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으로 여긴 부패한 자들의 추적은 계속되었습니다. 인하여 제을 견()과 추종자들은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가며, 오랜 기간 동안 지루한 도피생활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이때 산속 곳곳에 사찰(寺刹)을 짓고 집단으로 기거하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하여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등,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였습니다. 특히 신도들은 신선 복장을 하고, 조직적으로 태두인 

    제을 견()의 신병과 사찰을 지키니, 추격자들도 두려워하여 쉽게 도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나라 언덕에 위치한 복마전(伏魔殿)에서 덫을 놓고 웅크리고 있던, 귀왕 곤숙(㒭㑐)과 그 하수인들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붙잡혀, 천정이 낮고 한 여름에도 어름이 어는 지하 뇌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이때 저들은 함께 제을 견()의 행적을 쫓던 천부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여, 35일 동안 무려 세 번이나 이감하는 눈속임으로,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음력 6월의 일이며, 옮기는 과정에 뇌옥의 낮은 천정으로 인해 제을 견()이 세 번 무릎을 꿇었다하여, 삼복(三伏)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임금 제을 견()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협시(夾侍) 무사 인영(粦令)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눈부신 미모에 행위의 반듯함에 있어서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고, 특히 보통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숨은 조력자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변장과 잠입·은둔·검술 등의 절대 고수였습니다.

     

    패륜의 제왕이라는 오명을 쓰고, 동방 연합군에게 쫓겨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주군 제을 견(), 귀왕 곤숙(㒭㑐)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복마전 지하 뇌옥에 감금되었을 때, 간수들의 빈틈없는 감시망을 뚫고 뇌옥 안을 마치 

    도깨비불처럼 드나들며, 마귀를 경험한 주군의 증언을 들은 후 이 사실을 천부에 알려주었습니다이로 인해, 당시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마귀의 윤곽이 세상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주군의 유고(遺稿)를 

    수습하여 천제께 바침으로, 최고의 경전인 불경(佛經)이 세상 빛을 보게 하였습니다.


    끝까지 주군과의 의리를 지켜, 자결로써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 값을 치르려 하였으나, 천제의 만류로 결행을 뒤로 미루게 되었으며, 천제의 제안에 따라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잘라, 명계(冥界)로 떠난 주인에게 바치는 것으로 죄 값을 대신하고, 이때부터 천제의 번외 제자가 되어 특별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이후 인영은 협시보살(脇侍菩薩) 관세음(觀世音)으로 거듭나니, 최초의 비구니(比丘尼)이며, 주군 석가모니(釋迦牟尼)제을 견()의 뒤를 이어 불가(佛家)를 이끈, 최고의 종교지도자로 기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서 마귀들의 농간으로 주군 제을 견()을 잃게 된 협시 무사 인영(粦令), 천제의 안배에 따라 삼남 면()이 다스리던 천부 남방 오()나라에 몸을 기탁하고, 종교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오()나라는 지극한 풍요가 도덕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나라 안 사람들의 방종을 부채질하여, 총체적 타락이라는 말세적 상황으로 내닫고 있었습니다그 정도가 매우 지나침에 따라, 천제께서는 삼남 면()을 불러 도덕적 해이에 대해 질타하시는 한편

    자부(子婦) 중리(媑娌) ()에게 백성들을 바로 이끌 방편으로, 정의와 박애의 실천을 근간으로 하는 특별한 사상적 가르침을 내리셨습니다.


    인하여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무렵이면, 왕비 중리 옥()의 주도하에 궁전에 모여 다복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의논하고, 함께 국태민안 기원의 기도를 올리는 등, 바람직한 사회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왕비 중리 옥()의 이 사회운동이, 민심을 결집시키는 새로운 사상이 태동하여, 자신들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았던, 부패한 구 권력자들을 더욱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타락과 방종으로 해이해진 경계의 틈을 뚫고 침투한, 암살단에게 왕비 중리 옥()과 추종자들의 대다수가 살해되는 끔찍한 참상을 당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자애하던 자부와 백성들, 그리고 천부(天府)의 위신 추락 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잃으신 천제께서는, 삼남 면()을 불러 호되게 꾸지람을 하셨으나, 임금 면()은 오히려 아버지 인()의 잦은 잔소리를 불편하게 여겨 등한시하는 것으로, 어두운 기운을 더욱 키우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였습니다내부는 부패가 만연했고, 퇴패(頹敗)한 음악이 판을 쳤으며, 여인들은 음탕했고, 장유의 질서는 무너졌으며,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검은 기운이 또 다른 검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은 필연이니, ()나라 낭인 무사 난쟁이 (), 그의 아내 귀머거리 ()와 같은 아첨꾼들을 불러들였고, 왜궤(倭嬇)와 같은 간신들의 상습적 왜곡(歪曲)보고로, 종내 임금 신농 면()의 귀는 아주 멀게 되었습니다귀 없는 임금과 입 비뚤어진 신하들에 의해 나라의 기강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왕비 중리 옥()의 순교 사건을 기점으로, ()나라를 뒤덮은 검은 기운이 정점을 찍어, 연이은 화산 폭발과 지진·혹한·괴질 등의 재앙형태로 현실화되었으며, 그 정도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은둔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수행을 이유로, 당시 오()나라에 몸을 기탁하고 있던 관세음(觀世音) 인영(粦令), 온통 불바다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수도 (/)의 참상을 대하고, 모든 것이 지나친 풍요로 인한 임금과 백성들의 타락이 불러들인 재앙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후 인영은 포교를 할 때, 자신의 불명(佛名)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앞에, 남무(南無)라는 발어사를 붙이는 것으로, 무욕(無欲)을 지향하는 불교(佛敎)의 교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으니, 하늘의 가르침을 통해 음부(陰府)를 밝힐 불법(佛法)을 이룬 것이고, 뭍 중생들을 이끌 본을 세운 것입니다.


    이후 왕비 중리(媑娌) () 또한,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복음(福音)을 전하러 온 성녀(聖女)로 기림을 받게 되었으며, 왕비 중리 옥()이 시아버지 인()의 가르침을 받아, 민심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삼았던 새로운 사상은 선교(禪敎)로 구체화되어, 세세토록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대표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한편 여하한 과정을 거쳐 천부 진()나라 궁성에 기거하게 된 어머니 직녀 목(), 3차 동서대전의 단초를 제공하여 나라를 망치고, 차남 제을(帝乙) ()과 숱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선천(先天) 개벽에 기여함으로 확보하게 된 절대적 지분(持分), 천부 안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앞세워 마땅치 않은 행위를 노골화함으로, 궁성 안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있었습니다.


    특히 천제께서 각별히 총애하셨던, 젊은 첩실(妾室) 신첩(臣妾) ()에 대한 언행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는데, ()의 반듯한 행동거지와 아리따운 용모에 대한 정실(正室)로서의 질투심과, 앞서 유()나라에서 저질렀던 아버지 

    ()에 대한 배신행위와 도덕적 타락이 빚어낸 자괴가, 애꿎은 사람들을 핍박하는 그릇된 행태로 드러났던 것입니다이에 어머니 직녀 목()의 성정을 빼다 박은 듯 닮은 삼녀 제랑(娣娘) ()의 적극적 동조에, 두 사람에게 

    아첨하여 싸구려 권력을 얻고자 한 소인배의 그릇된 충성이 만들어낸 만행들로, 마냥 착하기만 한 신첩(臣妾) ()는 연일 곤한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삼녀 제랑 호()는 궁녀들을 시켜 작은 어머니처럼 꾸미게 하고, 그녀들로 하여금 망령된 행동을 하게 함으로, 신첩 호()의 품위를 손상시키려는 마땅치 않은 기도가 다반사였으며, 황궁 수비대의 대장인 남편 장수(將帥) ()의 직위를 이용하여,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황궁 궁수(弓手) 부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청탁하는 등, 매우 위험한 일을 별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어리석은 행위들이 빚어낸 결과로 인해, 결국 천제와 서자 제임(濟任) 그리고 다수의 천부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을 겪게 되었는데, 궁전 뜰을 거닐던 신첩 호(), 사냥과 훈련을 빙자한 궁수들의 화살에 맞아 서거(逝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의도했던 대로 살수들의 손을 빌려 눈엣가시 같은 신첩 호()를 제거할 수는 있었으나, 이 일로 인해 천부 안 어머니 직녀 목()의 위세가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삼녀 제랑 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궁수들을 사주한 귀왕 곤숙(㒭㑐)과 부패한 자들에 대한, 천부 사람들의 원한이 골수에 맺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천제께서 무한히 넓다는 의미의 여덟 팔()자에, 덮개를 의미하는 돼지해머리 두()자를 씌운 막혀서 답답하다라는 의미의 여섯 육()자를 지으시고, 죽이다라는 별도의 자의(字意)를 부여하셨는데,

    육십에 이르러서는 막강한 군사력과 천도(天道) 삼극(三極)을 앞세운 새로운 통치술 등으로, 이미 세상 전체를 호령할 정도의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반면 귀왕 곤숙(㒭㑐)을 중심으로 한 그릇된 자들이 여전히 동방의 절반을 차지하여, 천부의 정책과 전도를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었던 까닭에, 행위가 제한 당하고 있다고 여겨 답답하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저들에 의한 차남 제을 견()과 자부 중리 옥() 신첩 호()까지, 인척(姻戚) 삼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육십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죽이다라는 자의로 밝히신 것이니, 오늘날 기독교(基督敎)에서 말하는 짐승의 표 666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칠십대(七十代) >

    이 무렵 흑제(黑帝)의 위를 제수 받아 천부의 북방을 지키던 서자 제임(濟任), 중형 백제 야()의 유()나라 제위 찬탈 사건이 있은 후, 권유에 따라 동방 묘()나라에 머물며 백형 청제 궐()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신첩 호()의 총명하고 곧은 성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데다, 유학의 태두인 청제 궐()의 집중적 가르침이, 큰어머니 직녀 목()과 이복누이 제랑 호()를 둘러싼 정적들의 숱한 견제를, 몸으로 견뎌내며 체득한 질긴 

    근성이라는 값진 자산 위에 더해져, 스물을 막 앞둔 제임(濟任)의 인간적 성숙도는 이미 불세출의 기재로 기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머니 호()의 부음(訃音) 소식을 접하고 진()나라 수도 경()으로 돌아가서, 천제(天帝) 아버지 인()의 명에 따라, 어머니를 비롯한 인척 삼인 시해사건에 대한, 전담 조사단을 결성하여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인들의 범행이 워낙 용의주도하여 수사는 난항에 부딪혔고, 3차 동서대전에 이은 중형 제을 견()의 열반(涅槃), 성녀 중리 옥()의 갑작스러운 귀천과 오()나라를 엄습한 환경재앙, 그리고 어머니 신첩 호()의 

    귀천 등으로, 천부 안팎의 민심이 흉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흐트러진 민심을 다독이고, 나아가 숨어서 갖은 악행을 자행하고 있는, 마귀들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한 거병의 결정적 동기가 요구되던 시점에, 천제께서 칠순(七旬)을 맞이하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수선한 와중이지만 각국의 지도자와 호족들을 초대하여, 마귀의 도발로 동요가 심한 민심을 추스르고, 불안해하는 군소국 왕들을 독려해야 한다는, 제후들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고희연(古稀宴)을 열게 되었습니다.

    만찬을 준비하고 열방의 왕들을 초대했는데, 이때를 노려 구 권력자들이 천제를 암살할 요량으로 살수들을 투입하였습니다이에 대해 천부 측에서는 세작들을 통해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지만, 무리 중에 섞인 살수들을 구별해낼 

    수가 없어 대략 난감한 지경이었습니다.


    살수들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계획에 따라, 여흥이 무르익자 삼남 면()과 천제께서 짐짓 취한 양 망령되이 말씀하시어 주변을 어수선하게 했고, 이때를 틈타 살수들이 천제의 주변으로 슬금슬금 몰려들었습니다.

    이마에 동일한 머릿수건을 동여맨 일단의 무리들이, 동시에 움직여 한곳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천제께서 젓가락을 두드려 신호를 하시니, 이에 서자 제임(濟任)이 쏜살같이 단상으로 뛰어올라 그들을 모두 베었습니다.

    후 천제께서는 이때의 일들을 물 수()자와 찌를 자()자를 사용해 수자(水刺)라는 단어를 만들고, 수라(水刺)라는 별도의 음()을 부여해서 후대에 전하셨는데, 진지를 드시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며

    수신(水神)인 서자 제임(濟任)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저들을 모두 베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저들의 무차별적인 도발에 분노한 천부 사람들의 연이은 주청이 있었고, 천제께서 결국 가납하심으로, 서자 제임(濟任)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토벌대가 결성되어 출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제임(濟任)의 빼어난 지휘에 따라, 악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작전이 동방 전역에서 실시되었는데, 인하여 대다수의 기반을 잃은 악인들의 투항이 줄을 이었으며, 천부의 전복을 노려 구석구석에서 

    암약하던 세작들 또한 그들의 고변으로 함께 체포되어, 세상을 어지럽힌 죄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앞서 묘()나라에 머물며 대홍수의 재난을 지혜롭게 극복함으로, 일찍이 수신(水神)으로 기림을 받았던 제임(濟任), 다시 토벌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세상 근심을 모두 지워냄으로, 사람들의 중심이 되었다는 의미의 인황(人黃)으로 기림을 받게 되었습니다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동방 천부의 권력축이 장남 청제 궐()에서 수신(水神) 인황(人黃) 제임(濟任)에게로, 서서히 넘어가는 조짐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천부 남방의 오()나라가 화산 폭발 등 환경재앙이 그치지 않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임금 신농(神農) ()과 공주 요정(妖婷)이 백성들을 이끌고, ()나라 수도 곡()을 떠나는

    출곡(出谷)이 있었고,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서역으로 향하는 혹독한 천교(遷喬)과정이 있었습니다.


    또 귀왕 곤숙(㒭㑐)의 사주를 받은 한량들을 천부 궁수부대에 넣어줌으로, 제임(濟任)의 어머니 신첩(臣妾) ()를 죽게 한 것과, 둘째 셋째 두 오라버니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는 것으로 세인들의 원성을 샀던, 삼녀 제랑 호()와 장수 무() 부부의 탄핵이, 천부의 판관(判官) 청제 궐()의 주도하에 집행되었습니다이어 동방의 오()나라를 떠나, 우여곡절 끝에 서역 유()나라 언저리 빈()땅에 도착한 신농 면()과 그 백성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해안가 갈대밭을 거점으로 하여 또 다른 창업을 시도하였습니다하지만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미()나라와 인접국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모두 몰살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공주 요정(妖婷)의 빼어난 외교가 빛을 발하고, 일찍이 천제의 명에 따라 백제(白帝)로 임명되어, ()나라를 맡아 다스리고 있던 사위 서()의 군사적 지원과, 귀신 부대를 이끌고 출병한 옹()땅 우옹(禹雍)의 적극적인 조력으로, 결국 건국을 위한 기반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출곡 이전에 귀천한 왕비 중리(媑娌) ()을 대신하여, 공주 요정(妖婷)이 백성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총명함이라는 태생적 자산 위에, 지난한 과정이 지어낸 정신적 성숙이 소양으로 더해져 무쌍의 철학가로 성장함으로, 어머니 옥()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대신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인()의 창세철학인 천도(天道) 삼극(三極)을 근본으로 하고, 정의(正義)와 박애(博愛)의 실천(實踐)을 앞세운 어머니 옥()과 아버지 면()의 사상을 계승하여, 독창적 철학인 도학(道學)으로 완성하였으며, 부패한 자들의 정치 무용론 무위(無爲)를 앞세운 도학(道學)의 놀라운 파급이, 또다시 귀왕 곤숙(㒭㑐)을 비롯한 동방의 구 권력자들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정의와 박애의 실천이라는 것은, 천제께서 애초에 자부 중리(媑娌) ()에게 내려주신 철학으로, 즉 넘치는 풍요가 폐단이 되어 타락에 빠진 오()나라 사람들을 교화시킬 목적으로, 천제께서 전수해 주신 애민(愛民) 사상의 핵심을 이르는 것입니다.


    도학(道學)이라는 것은, 할아버지 인()의 천도에서 문리를 추구하고, 아버지 신농 면()의 자연과학에서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였으며, 어머니 중리(媑娌) ()의 애민(愛民) 사상에서 영적 안식을 얻고자 하여, 공주 요정(妖婷)이 정립한 수기(修己)의 철학을 이르는 것입니다.무위(無爲)라는 것은, 모든 것은 아()의 존()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세상의 중심인 아()가 바름을 추구하여 반듯해진다면, 인간 사회 역시 별도의 통치행위가 없어도

    자연의 순환운동처럼 어긋남이 없게 될 것이라는, 도학(道學)의 핵심을 이르는 것입니다.


    당시 절대 왕권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구 권력자들이 천제의 창세 철학인 천도(天道)에 밀려, 대다수의 지지기반을 잃고 세가 형편없이 위축되어 불안해하고 있던 차, 공주 요정(妖婷)의 이러한 사상적 발전에 더욱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이에 도학(道學)의 확산을 막을 요량으로 공주 요정(妖婷)의 제거를 결정하고, ()나라 살수 걸()을 고용하여 집요하게 추적하더니, 서역 유()나라 언저리 빈()땅에 이르러, 창업으로 사람들이 분주한 틈을 타 마침내 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공주와 함께하던 많은 백성들 또한 일단의 군사들에게 에워싸인 채 죽임을 당하여, 동구 밖에 있는 깊은 물구덩이를 피와 살로 메워 평지로 만들 정도였습니다.

    산속으로 끌려간 요정(妖婷)은 껍질이 벗겨지고 시신이 난도질당하여, 이름 모를 산천 곳곳에 뿌려졌으니, 절세미인이자 당대를 이끈 출중한 사상가 공주 요정(妖婷), 부패한 권력자들의 권력 강화를 위한 민심 단속용 제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녀의 처참한 죽음 소식을 접한 천제께서는, 그간 천륜(天倫)의 질서(秩序)를 어그러뜨린 패륜의 짐을 두려워하여, 징치를 미루었던 귀왕 곤숙(㒭㑐)의 제거를 결정하시고, 완전한 토벌을 위해 

    십간(十干)들의 맏이인 청제 궐()을 주장으로, 경상(卿相) 인황(人黃) 제임(濟任)을 부장으로 삼아 출병을 명하셨습니다한편 손녀 요정(妖婷)의 시신을 수습하여 완전히 복원할 것을 명하시니, 이에 잘린 팔다리 등 신체 전부를 찾아 바늘로 깁고, 벗겨진 피부에는 노란 진흙을 발라 복원했으며, 수정으로 해골(骸骨)을 가공하여 끝내 찾지 못한 머리를 대신하였습니다이후 공주 요정(妖婷)의 도학을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수정해골을 신물(神物)로 여겨 

    섬기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 또한 생전 요정(妖婷)의 아름다운 외모나 철학자로서의 높은 품격을 흠모하여, 화려한 빛깔과 도도한 자태의 화계(花鷄)를 공주 요정처럼 여겨 너나없이 기르게 되었고, 나아가 혼인의식을 치를 때 공주 요정과 같은 

    아름답고 총명한 자녀 얻기를 기원하여, 화계를 예물로 올리는 폐백의식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또한 시신이 뿌려졌던 산천에 계곡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부여하시니, ()나라 수도 곡()의 공주 요정이 이곳에서 영면에 들었다는 의미로, 이후부터 사람들은 요정의 시신이 뿌려졌던 곳과 같은 깊은 골짜기를 계곡(溪谷)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후 격노하신 천제의 지시에 따라, 범인 해()나라 살수 걸()과 그 일당들이 체포되어 뼈가 갈리는 처벌을 받게 되었고, 뒤에서 사주했던 부패한 구 권력자들 역시 모두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으며, 다만 귀왕(鬼王) 곤숙(㒭㑐)과 음귀(陰鬼) 신수(姺嫂)는 체면을 버리고 구걸하여, 덤으로 목숨 한 자락을 얻어 구질구질한 생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후 천제께서는 자부 중리(媑娌) ()과 손녀 요정(妖婷) , 천부의 식솔들을 연거푸 살해한 저들의 비인간적 도발이 동기가 되어 벌어지게 된, 동방 신구 세력들 간 건곤일척의 마지막 대결과 그 시점 그리고 시대적 정서를, 자신의 삶 백수를 십 등분한 것 중 일곱 번째를 뜻하는 일곱 칠()자로 밝히셨습니다.


    일곱 칠()자는, ()와 신()을 대표하는 신구의 마지막 대결은, 신흥 천부 세력이 이겨 저들을 완전히 괴멸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었으며, 내친걸음에 천제께서는, 과거 구세력과의 첨예한 대립과 서역 미()나라의 

    방해 등으로 지지부진했던, 서역 육국(六國) 연방과의 연맹(聯盟)을 다시 추진하시고, 통일된 동방 육국(六國) 연방의 압도적 힘을 앞세워 마침내 완성을 이뤄냄으로, 모든 신들의 주인인 신주(神主)로 기림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문체(文體)의 이름이라는 별도의 자의(字意)도 부여하셨는데, 천도(天道)」 「삼극(三極)을 앞세운 완전한 세상 인내천(人乃天)의 건설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큰 기쁨을 선사하는 완성된 문장(文章)에 비유하여 밝히신 것입니다.

     

    팔십대(八十代>

    천제의 의지와 핍박당하던 사람들의 궐기가 만들어낸 인내천(人乃天)의 완성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마치 관습처럼 대물림되어 오던 마귀들의 폭정이 종식되고, 자유와 함께 도래한 민주 체제가, 혼돈의 세상을 밝힌 밝은 불꽃이 되어 그 가치를 드러냈습니다그리고 천제께서는, ()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방 육국 연방에, ()나라를 중심으로 한 서역 육국 연방을 더한, 세계 12열강들의 연맹(聯盟) ()을 완성하시고, 환인(桓因)천제(天帝)의 위에 오르심으로, 종내 이 세상 모든 땅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한편 서역에서 유()나라에 버금가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미()나라의 훼방으로, 지지부진하던 후천(後天) (/)나라 건설이, 환인(桓因) 천제(天帝)의 영향력으로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삼남 신농(神農) ()의 강대국들을 대상으로 한 공화(共和)제의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 ()나라와 미()나라의 경계지역 빈()땅은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산을 깎아 넓은 갈대밭을 메우고, 관개(灌漑)를 신설하여 맑은 물을 양껏 공급하니, 거친 들녘은 넓디넓은 옥답(沃畓)으로 바뀌었으며, 도로를 신설하고 관청을 지어 백성들의 편의를 도우니, 휑하던 주거지 언덕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큰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즐거워하여 참새처럼 재잘대며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틈에서도, 지도자 신농 면()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황새처럼 빛났으며, 아내 중리(媑娌) ()과 딸 요정(妖婷)의 죽음으로 더욱 힘을 얻게 된 선교(禪敎), 박주가리의 씨앗처럼 널리 널리 퍼져 나갔고, 정의와 박애의 실천을 근간으로 한 신농 면()의 정치(政治), 마치 물 억새처럼 빠른 속도로 서방세계 전역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인접국 사람들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찾아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으며, 결국 인접국 미()나라와 유()나라는 백성들의 대거 이탈로 세()가 크게 위축되어, 경쟁에서 어깨 한 쪽씩을 신생국 비()나라에 내주게 되었습니다.

    이즈음 하여 환인(桓因) 천제(天帝)이신 아버지 인()의 중재로, 서역이 새로운 연방국가로 재편되었는데, 공식 국명은 비()나라이나, 토착세력인 미()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나라로 명명하고, 선천(先天)인 동방 인내천(人乃天)의 통치체제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하여, 후천(後天) 개벽이라 칭했으며, 천부밀기(天府密記)에는 천제께서 삼남 신농 면()을 앞세워 이룩하신, 두 번째 천부라는 의미의 천축(天竺)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앞서 부정 축제와 부당한 인사로 1차 탄핵되었던 삼녀 제랑 호()와 장수 무() 부부가, 정심하여 수기함으로 정의로운 사람들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이들의 수행과정을 모두 살피신 천제께서 흡족해 하시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심으로, 3차 동서대전의 결과 천부의 영토로 귀속되어, 사위(四衛) ()가 맡아 다스리던 계()나라의 궁성수비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비록 남의 신하된 입장이었지만, 과정에서 지난날과는 달리 청렴과 성실의 끝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또다시 천제께서는 천축(天竺)의 궁성 수비대를 맡겨, 후천의 천주(天主) 신농 면()의 정사를 돕게 하셨습니다.


    이때 역시 발군의 정치 역량을 드러내, 천축(天竺)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큰 공을 이룸으로, 그에 따른 보상과 함께 천제의 안배에 따라, 일단의 군사들을 얻어 불모의 서북방 지역을 개척하게 되었는데, 역시 성실을 앞세웠던 까닭에, () 있는 임금의 통치를 바랐던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어 무사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이에 천제께서는 학식이 높은 선비들을 보내 건국을 지원하여,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하고 ()라는 국명을 내리셨는데,

     “내 살과 같은 딸제랑(娣娘) ()가 탄핵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나태(懶怠)한 그곳 사람들을 일깨워 다시 일으킨 나라다.”라는 의미입니다.


    후 수()나라는 두 내외의 선정(善政)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더니, 나중에는 세계를 대표하는 열두 강대국인 12지지(地支)로 분류되어 ()나라로 불리게 되었는데, “오직 주인만을 섬기는 충견(忠犬)

    처럼 성실로 임하여 이룬 나라이다.”라는 의미입니다보령(寶齡) 팔십을 넘기신 천제께서는 분주했던 천부 인내천(人乃天) 경영을 서자 인황 제임(濟任)에게 일임하시고, 어머니 직녀 목()과 함께 서역 후천(後天) 천축(天竺)에 

    거하시며, 잠시나마 고매한 품격의 선비로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또 후대를 위한 인류 창세역사와 옥편 등 여러 경전을 집필하셨으며, 차남 제을(帝乙) ()의 유고(遺稿)를 마름하여 불가(佛家) 경전으로, 자부 중리(媑娌

    ()의 유고를 마름하여 선가(禪家)의 경전으로, 손녀 요정(妖婷)의 유고를 마름하여 도가(道家)의 경전으로 완성한 후, 인쇄(印刷)하여 보급하는데 갖은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후 천제께서는 무한히 넓다는 의미를 부여한 여덟 팔()자를 지어, 자신의 삶 백수를 십 등분한 중 여덟 번째를 뜻하는 문자로 삼고, 정치적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얻게 된 팔십대의 정신적 자유로움과 당시의 정서를 후대에 전하셨습니다.여덟 팔()자에는 여덟이라는 뜻 이외에 팔자 형()」 「나누다라는 별도의 자의(字意)가 부여되어 있는데, 팔자 형()은 이때 집필하신 경전을 통한 세상 교화가, 마치 여덟 팔()자의 자형(字形)처럼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거쳐 널리 확산되어 나갔다는 의미이고, 나누다, 세상을 인황(人黃) 제임(濟任)을 천주(天主)로 한 동방의 선천(先天), 삼남 신농(神農) ()을 천주(天主)로 한 서역의 후천(後天)으로 나누고, 각자에게 다스리게 하는 안정된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는 의미입니다.

     

    구십대(九十代>

    구토 각혈과 함께 많은 코피를 흘리시고, 인류의 어머니 직녀(織女) ()께서 돌아가시니, 천제의 보령 구십 중반 때쯤의 일입니다.

    새의 모이주머니로 폄훼될 만큼 숱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아내의 삶 전반에 대해 불쌍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살아생전 이처럼 허물 많은 삶으로 인해, 결국 마지막까지 텅 빈 굴속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서늘함만을 남겼다고 하셨으며, 전반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그나마 나로 인해 그만큼 다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 또한 아내의 조력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어, 함께 한 삶이 서로에게 큰 빚이 없음을 밝히셨으며, 모든 것을 소진하고 마치 마른 수수깡처럼, 깡마르고 자그마한 육신만을 남긴 채 떠났다고 하셨고, 동서를 

    망라한 세상 사람들 모두, 아내 직녀 목()의 귀천을 애도하여 고요에 잠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또한 세상 모든 성씨(姓氏)의 줄기라고 말씀하시어, 인류의 성()이 두 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고, 각국의 많은 조문과 부의금을 통한 위로가 있었으며, 이에 부의금 모두를 솔로 털 듯 깨끗이 쓸어, 구휼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말씀하시어, 아내의 마지막이 공허하지만은 않았다는 것과, 부의금의 바람직한 사용에 대해 후인들에게 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한편 본래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정을 타고난 삼남 신농(神農) (), 천축(天竺) ()나라를 완성하고 천주(天主)의 위()에 오르자,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재에서 오는 심적 공허감을 이기지 못한 울증에다, 오랜 여행 과정의 풍찬노숙 탓에 얻게 된 폐질환이 도져, 심신 양면으로 극심한 해이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요양 차 잠시 업무를 떠나 가료를 하였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길어지는 국정 공백에 따른 인근 연방국들의 준동은 천제의 번민을 더욱 깊게 하였습니다.


    보령 이미 일백을 바라보고 있어 기력이 쇠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인데다, 장차 삼남 면()의 유고로 빚어질 서역 사회의 정치적 혼란은, 또다시 숱한 사람들의 피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천제께서는 천축(天竺) ()나라 땅 일부를 얻어내서, 거기에 동방 선천(先天)의 행정관청 고()를 설립한 후, 선천의 천주 인황 제임(濟任)을 불러들여, 서방세계를 맡긴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고, 그 전단계로 삼남 신농 면()의 재가를 얻어내 진행한, 동서 관리들 간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애초에는 삼남 면()을 위시한 국사 려()와 사위 서() , 천축(天竺) 핵심 요인들의 맹렬한 반대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기어코 실현하고자 한 천제의 집요한 설득과 삼남 신농 면()의 지극한 효심이 순종으로 이어져, 결국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물론 상응하는 선물도 있었는데, 내려놓으신 환인(桓因)의 위를 삼남 면()이 승계할 수 있도록 힘써주신 것이니, 결국 서자 제임(濟任)을 앞세워 동방 육국의 뜻을 하나로 묶어 밀어주는 것으로 그 뜻을 관철시키셨던 것입니다.


    천제의 설계와 이복동생 제임(濟任)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2세 환인(桓因)의 위에 올라 동서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나, 오랜 떠돌이 생활에서 얻은 폐질환과, 미리 명계로 떠난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다 깊어진 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버리니 향년(享年) 칠십이었습니다이때 천제께서는 삼남 면()의 귀천을 기화로, 천축(天竺) 연방 내부의 정변이 있을 것을 짐작하시고, 장례를 뒤로한 채 외유를 핑계로 서자 

    제임(濟任)과 함께 조용히 천축을 떠나 옹()땅으로 향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제임(濟任)으로 하여금, 다시 옹((거란(契丹안파(安巴) 네 곳의 병사들을 규합하게 하시고, 반란으로 고위 관리들의 수중에 떨어져, 이미 남의 권역이 되어버린 천축(天竺)으로 돌아와 순식간에 몰아쳐, 역사의 물결이 순조롭게 흐르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주동자 큰 사위 서()와 둘째 사위 려()를 체포하고, 나머지 반란군들도 모두 제압했습니다이러한 과정을 거쳐 애초 천제께서 계획하신 대로, 후천 천축(天竺) 연방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제임(濟任), 동방 선천 선비들의 열화와 같은 주청을 받아들여, 큰 자형(姊兄) ()를 변방의 귀퉁이 땅 ()로 나가 살게 했으며, 주술 등의 방법을 사용해 많은 동방 선비들을 상하게 한 둘째 매형(妹兄) ()에게는, 궁형(宮刑)을 내리고 방출함으로 동방 선비들의 원성을 잠재웠습니다.


    후천(後天)의 국사(國師)를 역임했으며, 천재적 두뇌로 천부(天府)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던 려(), 실각(失脚) 이후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불법(佛法)을 좇아, 약사여래유리불(藥師如來琉璃佛)이라는 법명으로 불가(佛家)에 귀의했으며, 천도(天道) 삼극(三極)에 뿌리를 둔 주옥과 같은 다수의 경전들을 남김으로, 또다시 인류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습니다다만 형벌에 앞서 서자 제임(濟任)을 향한 천제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실제 궁형(宮刑)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후 천제께서는 까마귀와 같은 몰골로 세상을 떠돌며, 하나씩 주워 모은 지식들로 이 땅의 새로운 하늘 천축(天竺) ()나라를 열었으며, 나아가 천축을 기반으로 세계 12열강들의 맹주인 환인(桓因)의 위()에까지 올랐던, 삼남 면()의 치열했던 삶과 업적을 기려 ()이라 칭하셨습니다. ()이라는 것은, 철새처럼 세상을 떠돌며 인류를 위해 베푼 행위가, 사람들에게 안석(案席)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했다는 의미입니다.

     

    백대(百代>

    임금의 장례식을 전후하여,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려했던 천축(天竺) 각료들의 반란이, 오히려 서자 제임(濟任)에 의해 모두 토벌되어, 벌을 받거나 쫓겨나는 자충수가 됨으로, 명계로 떠나는 2세 환인(桓因) 신농 면()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지만, 오히려 인황(人黃) 제임(濟任)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습니다보통의 경우라면 비록 권력을 잡았다 하더라도, 조당을 비롯한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오히려 무력으로 제압하여 이전 정부의 각료들을 모두 몰아내 버림으로, 새로운 통수권자가 된 제임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편하고 좋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하여 천제께서 의도하신 바대로 서방세계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으나, 정작 천제께서는 노구를 이끌고 무리하게 전투를 치른 것이 적취(積聚)로 굳어져, 큰 병을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앞날을 위해 마지막까지 열정을 아끼지 않으시니, 새로운 세상 건설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그 공을 기려 넉넉한 재물로 보상했으며, 아울러 새로운 경제 정책 보시(布施)를 시전하게 하는 것으로, 서민층에게도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생산능력이 있는 국민들에게 정부가 미리 기반을 부여하는 보시 정책이 큰 실효를 거둬, 과거 인류의 먹거리 고민을 일소시켰던 2세 환인 신농 면()의 벼농사처럼, 사람들에게 큰 풍요를 선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완전한 인황(人黃) 제임(濟任)의 시대가 열렸습니다천제께서도 일찍이 천하를 재 정돈할 거성의 출현을 역()을 통해 밝히셨던 바, 스스로 북을 울려 자신이 모든 별을 매단 북진별임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서자임을 들어 껍질에 불과하다 하였고, 조금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라 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나서서 용맹함을 드러내면 간이 부풀어 올랐다 했고, 짐짓 안목을 감추어 뒷전으로 

    물러나 있으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소경 같은 사람이라 했으며, 신념을 갖고 맹렬하게 나아가면 선불 맞은 짐승 같다 했고, 혹여 북소리에 말이 놀라 낙마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가 손뼉 치며 즐거워했다 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하기가 순찰병 같고, 유익하기가 논밭 같으며, 유용하기가 금괴와 같고, 일관성 있기가 일월 같으며, 마음 씀이 깊어 심연 같고, 인품이 두드러져 높은 처마 같았으며, 심금을 울리는 큰 북소리 같고, 삼천(三天)을 쓸어 한 품에 안고, 그 가장 높은데서 세상을 굽어 살피니, 이구동성 모든 별을 매달고 있는 북극성(北極星)이라 칭하였습니다서자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높은 신분의 벽 등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아버지 인()의 동방 선천(先天)과 형 신농 면()의 서역 후천(後天) 경영권을 모두 승계하여, 이 땅의 새로운 하늘 인황천(人黃天)을 열고 천주의 위에 올랐으며, 동서를 통합한 단일 정부 ()나라를 세우고 태황제(太皇帝)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형 신농 면()의 뒤를 이어, 세계열강들을 하나로 묶은 12()의 대표 환인(桓因)의 위를 계승해, 연맹을 더욱 공고하게 하였으며, 신분제도를 혁파하고 자유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을 적극 권면하는 등,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 건설의 이상을 실현하였습니다천부밀기(天府密記)에는, “쪽빛 물감으로 칠한 듯 얼룩얼룩한 것들을 가려 가을 하늘처럼 깨끗하게 했고, 바닷물이 개펄을 밀은 듯 울퉁불퉁한 것들은 정돈하여 매끈하게 했으며, 아교풀로 붙인 듯 동서 양 대륙의 친화를 전례 없이 끈끈하게 하였고, 나쁜 관습 갈아엎기를 쟁기가 묵정밭 갈듯 했으며, 성정의 밝기가 맑은 하늘의 태양 같고, 선대 선후천(後天) 천주인 아버지 인()과 형 신농 면()의 권위를 존중하여, 절대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천제께서도 기장술 그릇이라는 말씀을 남기신 것으로, 서자 제임(濟任)의 숨겨진 가치에 대해 밝히셨습니다.

    기장, 뭍사람들로부터 인황(人黃)으로 기림을 받는 최고지도자 태황제(太皇帝)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스스로를 낮춰 기장 한 톨만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줄 아는, 제임이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술 그릇, 인류에게 끼친 막대한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 자그마한 술그릇에 채운 잔술로 흡족해했다고 말씀하셔서, 서자 제임(濟任)의 맑고 소박한 성정에 대해 거듭 밝히신 것입니다.


    ()이라 칭하셨으니, 태황제 인황 제임(濟任)이 사람들에게 안석(安席)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했다는 의미로, 제임(濟任)에 의해 열리게 된 새로운 세상 인황천(人黃天), 악인들의 준동을 억제하여 저들의 무도함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이제 이 땅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신 천제께서 귀천을 준비하셨습니다.


    만물의 화육을 돕는 절대자이시고, 젊어서는 우조단의 수장인 신인(神人) 견우(牽牛) ()이시며, 인내천(人乃天)을 열어 십간(十干)을 세움으로 모든 신들의 주인인 신주(神主)로 기림을 받으셨고, 문화로 세계를 통일한 십이환(十二桓)의 주인 환인(桓因)이시며, 가느다란 털 올 같았던 인류를 하나로 묶어 사람답게 살게 한, 진정한 인류의 아버지이십니다아내 직녀(織女) ()과 아들 신농(神農) ()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서자 제임(濟任)의 지극한 효성으로 아름다운 만년을 보내시다, 스스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시고, 목을 매어 원래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셔서 영원한 하늘이 되셨습니다.


    아버지 인()의 영면과 함께 천부밀기(天府密記)를 넘겨받게 된 인황(人黃) 제임(濟任), 다음과 같은 문자들을 남기신 것으로 아버지 인()의 귀천과 관련하여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곧 즉()자에,이제, 만약, 만일, 혹은, 가깝다, 가까이하다, 나아가다, 끝나다, 죽다, 불똥이라는 자의(字意)를 부여하여, 여느 사람들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불똥이 

    사그라지듯 그렇게 귀천에 임하셨으나, 다만 아버지 인()께서는 인류를 위하여 특별한 약속 말씀을 남기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잘못 지은 밥 석()자로, 이 땅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셨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다만 목을 맨 귀천 방식을 두고 잘못 지은 밥이라고 표현하셔서, 감당할 수 없는 유족들의 아픔을 

    드러내셨습니다.이미 기()자에 이미, 벌써, 이전에, 원래, 처음부터, 그러는 동안에, 이윽고, 다하다, 다 없어지다, 다 없애다, 끝나다, 끝내다라는 자의들을 부여한 것으로, 이 땅에서의 맡은 바 소임을 일찍이 다하고 돌아간다는 당당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시골 향()자에 마을, 고향, 태어난 곳」 「장소」 「지구」 「향하다」 「치우치다, 편애하다, 누리다라는 등의 자의를 부여하여, 장례 행렬이 지구를 종단하여 고향땅으로 향했으며, 편애로 유독 

    아픈 성장기를 보냈던 사()나라에서 선영에 모셨다고 밝히셨습니다.마구간 구()자에 마소가 모이는 곳, 벼슬의 이름, 말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벼슬, 모이다라는 자의를 부여하여, ()나라에 위치한 

    ()씨 일족의 선산(先山), 생전 각종 벼슬 이름을 달고, 세상을 위해 일하던 소들이 그 소임을 다하고 모이는 곳이라 칭하여, 견우성(牽牛星)이신 천제 아버지 인()께서 이곳에 오시게 된 까닭에 대해 밝히셨습니다.



    천삭역사(天朔歷史)

    〔〔발문(跋文)〕〕- 환인(桓因)의 위()2대 삼남 신농(神農) ()에서 3대 서자 제임(濟任), 그리고 그 아래로 7대까지 전해져 내려오다가, 세상이 천부의 통치 문화권 아래 완전히 들어오게 되자, 새삼스레 환인을 별도로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졌습니다그래서 세상의 근간인 십간(十干)들이 더 이상 환인이라는 호칭을 내세우지 않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천부는 중앙정부 진()과 경기(京畿)로 나누어 다스리던 통치체제를 일원화하고, 구간(九干) 구환(九桓)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환(九桓) 체제가 3,301년 간 유지되어 오다가, 유여곡절 끝에 배달(倍達)」 『()으로 이어졌으며1,565년간 유지되어 오던 배달 한() 체제가 삼한으로 분리되는 위기를 맞았다가, 다시 통일되어 조선(朝鮮)

    이라는 이름으로 2,106년간(2,096?) 유지되었는데천부의 사가들은 한()의 최고 지도자를 환웅(桓雄)으로, 조선(朝鮮)의 최고 지도자를 단군(檀君)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천삭역사(天朔歷史)를 단 한 문장으로 정의를 하자면, 앞에 나열한 바처럼 약 7,000여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던 천부의 역사가, 어느 날 갑자기 인류사에서 완전히 삭제되어버린 사건을 이르는 것입니다.

    즉 한수변의 오랑캐 유철(劉徹)동중서(董仲舒), 천부 고조선의 천주 단군(檀君)을 비롯한 종사자들을 시해해 사체를 유기하고, 조당 해체와 종묘(宗廟) 파훼 장서(藏書)들을 탈취하는 등의 반란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 후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기 위해, 사마천(司馬遷) 허신(許愼) 장건(張騫) 등에게 사주하여, 절취한 역사서 사기(史記)의 왜곡과 기타 도서들의 분서(焚書), 한자(韓字)의 한자화(漢字化)와 한글(韓㐎)을 말살하는 등, 인류 7,000여년의 문화와 역사를 모두 지워버린 날조사건이 그것입니다.


    갑신년(甲申年/bc128)부터 갑오년(甲午年/bc118)까지 10년간에 걸쳐 있었던 일이며, 구체적 사례로는 ()가 기자를 조선에 파견하여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칭하게 되었다.” 위만에게 정복당하여 위만조선(衛滿朝鮮)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등의, 꾸며낸 이야기들을 실제 역사처럼 끼워 넣기 함으로, 천부의 위상 폄훼를 기도하는 한 편, 자신들이 저지른 역천사건을 정당화하려는, () 인류 사기사건의 전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역사왜곡과 날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간교했는데, 대를 이은 천부의 역사를 신화화하여 사기(史記)에 남기도록 한 후, 다시 날조된 관련 거짓정보들을 별도로 남기고, 또 역년(歷年)과 관련 인물들의 생몰 연대를 조작하는 것으로, 후인들이 진실에 대해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그러나 그토록 치밀했던 저들의 음모가 천삭(天朔)이라는 역사로 후대에 전해지게 된 까닭은, 오히려 저들의 지나친 간교함 때문이었는데, 천부의 역사는 

    천부의 사관들로 하여금 왜곡하게 한다는 동중서의 신념에 따라, 반표(班彪)와 두 자녀 반고(班固)」 「반소(班召)와 같은, 천부의 사관들을 고용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날조의 전체 기획자 동중서는 자신의 무도함을 감추기 위해, 천부의 사가들을 억압하여 필진으로 활용하는 방편을 주로 사용했는데, 역사 왜곡은 사마천(司馬遷)과 반표(班彪) 반고(班固) 부자에게, 문자 왜곡은 허신(許愼)과 반소(班召)에게 맡겼던 것입니다천사장(天使長) 반표는 사마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 사기(史記) 후서를 썼고, 반고는 아버지 반표의 뒤를 이어 한서(漢書)를 써서 진실을 전하려 했으며, 반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로부터 전해들은 정보를 취합한 후, 관련 문자들에 별도의 훈과 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옥편에 남겼던 것입니다.

    후 반표와 두 남매는 동중서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진실을 전하고자 한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천삭역사는 천부의 사가들이 몸을 바쳐 남긴 피의 절규인 것입니다.

     

    〔〔천삭(天朔)〕〕

    조짐(兆朕)

    임금에 대한 충(),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스승에 대한 의(), 내 생명의 근원인 부모에 대한 효(),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천륜의 질서입니다.

    천부 조선(朝鮮)은 여덟 제후가 단() 천주를 중심으로 협치를 하는 봉건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말기에 이르러서는 두 제후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 천주 단()을 노골적으로 업신여긴 것이 나쁜 선례가 되어, 사회 곳곳에는 

    불충·불의·불효가 팽배했으며, 결국 그 무도함이 화를 불러 하늘의 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대홍수에 겹친 지진 해일로 천부의 강역 대다수가 물에 잠겼으며, 천부의 사가들은 당시의 상황을 상전벽해(桑田碧海)로 기록했는데, 누에에게 있어 삶의 전부인 뽕나무처럼,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안정적인 먹거리와 주거 

    등의 편의 전반을 제공해 오던, 천부 조선(朝鮮)의 강역 전체가 물에 잠겨 푸른 바다처럼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천주(天主) 고열가(古列加)

    고기(古記)에는, 배달(倍達) ()의 초대 환웅(桓雄)거발환(居發桓)이라 하였는데, “두 세력의 충돌로 시체가 산을 이뤄 천부가 마치 무덤처럼 되었으며, 와중에 그가 승리하여 환()의 맥을 잇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또 마지막 18세 환웅을 거불단(居弗檀)이라 하였는데, “시체가 산을 이루는 상호 충돌의 결말이 있었으며, 환웅 천주의 옥체가 검에 의한 상해를 입어, 결국 단()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또 조선(朝鮮)의 초대 단군(檀君)왕검(王儉)이라 하였는데, “천주 거불단(居弗檀)을 보좌하던 비왕이, 마치 도리깨로 타작을 하듯 일시에 천부의 혼란을 정돈한 공으로, 삼극(三極)의 도()를 수호하는 새로운 천주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이고, 마지막 47세 단군을 고열가(古列加)라고 하였는데, “나라가 망해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옛날처럼 되었으며, 뼈와 살이 분리되는 환란이 천주의 옥체에 더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유철(劉徹)

    (), “임금을 칼로 위협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미이고,

    (), “서역이 길러낸 세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이니, 결국 단() 천주 고열가(古列加)를 시해하고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범인이, 서역이 심어놓은 첩자 유철(劉徹)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단() 천주의 명을 받은 천사(天使)」 『유철(劉徹), 한수변을 근거지로 하여 고만고만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지역에 기자(箕子)로 파견되어, 치수를 비롯한 대소사를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 「천사(天使)라는 것은, 천부의 사관이라는 의미이고, 기자(箕子)라는 것은,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의 정사를 돕고자, 천부가 일찍부터 각 나라에 파견해오던 선생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근래에 천부의 강역이 집중 호우로 인한 잦은 강하의 범람이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한수와 장강유역의 치수를 전담해오던 유철이 호출되어, 그의 병사들과 함께 천부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엄청난 대홍수의 환란이 닥쳤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환란에 직면한 단() 천주께서, 천사 유철을 불러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치수에 관한 많은 지식과 구난에 숙련된 다수의 병력을 이끌고 

    온 유철을 신뢰하여, 결국 재난 수습과 구휼의 전권을 위임하게 되었습니다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수몰로 빈손인 비무장의 병사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와중에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두 제후의 다툼은 차마 봐 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고, 그런 상황 앞에 움츠린 천주 단군(檀君)의 위상은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이때 가장 시급하게 행해져야 할 일이, 천부의 서고에 보장되어 있던 장서들을 안전지대로 옮기는 일이었고, 따라서 대다수의 책들이 유철의 거점인 탄()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동중서(董仲舒)

    (), “혼란 중에 매우 엄중한 일을 맡게 되었으며, 그의 주관 하에 천부의 강역을 비롯한 세상 땅들이 완전히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그가 유철을 보좌하던 2인자였다.”는 것이며,

    (), “면면히 이어져 오던 천부의 역사를 모두 흩어버리고, 짐짓 편안한양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의미이니, 결국 동중서는 역천의 반란을 저지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흉을 떠는 매우 저속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역사서 사기(史記)와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옥편(玉篇), 사실상 천부의 문화 전부를 수중에 넣게 된 유철은, 꿈틀대는 검은 욕망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서역이 길러 동방 천부에 심어놓은 첩자였지만, 작금은 한수와 장강유역에 파견되어 그곳 사람들을 다스리는 기자(箕子)였기에, 그곳을 보다 발전시키고 나아가 완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한, 최고의 지도자로 기림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탄()지역의 현실은,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할 수단이 없는 문맹지대였고, 사물을 그림형태로 표현하는 원시문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확연히 대비되는 천부의 문자문화와 역사가 그토록 탐이 났던 것입니다.


    이때 측근 중 동중서라는 간특한 자가 있어 역천(逆天)을 부추겼는데, 유철은 짐짓 아닌 양 손 사례를 치고 있었지만, 탐욕으로 검게 된 그 속내를 휘 번뜩이는 두 눈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끄덕이는 유철의 턱 끝을 신호로 동중서의 밀행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숱한 천부의 요인들이 구휼대로 믿었던 유철의 병사들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검붉은 피는 범람하는 황톳물에 섞여 구분되지 않았고, 시신의 대다수는 다른 

    사체들과 함께 바다로 떠내려갔습니다대소신료들의 실종 등 의혹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으나, 황망한 중이라 누구하나 나서서 점검하는 사람이 없었고, 와중에 고지대로 몽진했던 단() 천주와 두 제후 역시 함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사건을 목도한 대다수 사람들 역시 죽임을 당했으나, 천사장반표(班彪)반고(班固)」「반소(班召)두 남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도구로 활용한다는 동중서의 음흉한 계획에 따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후일 한서(漢書)를 지어 진실을 후대에 전한 반고(班固), 동중서의 음흉함에 대해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東方朔)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삼천갑자(三千甲子), “3,300년간 이어져 오던 ()의 

    역사를 이르는 것이고,동방삭(東方朔), “동중서가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오던 동방의 역사를 모두 삭제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단() 천주의 존함을 나라의 패망과 함께 천주의 옥체가 칼로 해체되는 가혹함이 더해졌다.”는 의미의 고열가(古列加)라고 기록하고, 관련 문자마다 별도의 자의를 부여하는 것으로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천의 범법자들이 이름으로 사용한 문자에도, 저들의 구체적 범범 사실들을 별도의 자의로 덧붙여서, 반란사건에 전모에 대해 단서를 남겼던 것입니다.

     

    사마천(司馬遷)

    (), 동중서가 원래 천부의 사관이었던 사마천에게 역사 왜곡에 대한 전반을 일임했다.”는 것이고,

    (), “삼한 중 마한(馬韓) 출신인 그가 천부의 역사를 마치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하게 했다.”는 것이며,

    (), “천부의 사관이었던 사람이 벼슬을 바꾸어 유철의 신하가 되었으며, 결국 그의 붓 끝에 의해 천부의 역사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천부의 조당에서 쫓겨났던 사마천은, 동중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기(史記)왜곡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도리를 지키지 못함으로 해서 발현되는 부끄러움이 붓끝을 자극해, 더욱 대담한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우선 억울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거세당했다고 하여,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임을 내세웠으며, 특히 천삭(天朔)의 주동자 동중서에 대해서는 매우 청렴한 인물로 그리고, 거기다 동중서를 모방한 가상 인물 동방삭(東方朔)을 통해, 동중서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기인으로, 유철은 그런 인물들을 용납하는 통 큰 인물로 각색하는 등, 아첨의 끝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역사의 초대 환인천제 인()을 반수반인의 수인씨(燧人氏), 2세환인 삼남 신농 면()신농씨(神農氏), 천제의 차남 제을(帝乙) ()복희씨(伏羲氏)로 칭하여, 삼황(三皇)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냈습니다또 창세 당시 천부의 중요 인물 요((()를 재등장시키고, 당시 세계 최고 부자나라였던 남방의 오()나라 역사를 각색해 하()나라 역사로 꾸몄으며, ((() 삼대의 역사를 각색해 하((()로 탈바꿈시키는 등, 마치 쉰 개의 산가지 주무르듯 제멋대로 역사를 날조하였습니다.

     

    장건(張騫)

    (), “유철의 기반을 확장시킬 목적으로 동방의 수장 기자(箕子)들을 색출해 제거했다.”는 것이고,

    (), “변방의 말처럼 거친 들녘을 집으로 여겼으며, 아무 생각 없는 천치가 되어 동중서의 명을 맹목적으로 좇았다.”는 것입니다.

    장건은 오랜 세월동안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천부가 파견한 기자들을 색출해 죽이고, 각 나라 조당에 오직 자신들의 명만을 좇는 도올(擣扤)들을 심었습니다. ((), 특정인을 암살하고자 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공동 우물이나 잔치 음식에 독극물을 넣어 모두를 죽여 버리는 사악한 살수들을 이르는 것이고, (), 힘 있는 세가나 관청에 빌붙어, 고문이나 형() 집행을 대행해 먹고사는 망나니들을 이르는 것입니다.)

    또 천부관련 문서나 한자(韓字)한글(韓㐎)에 관한 책들을 모두 회수하여 소각하는 한편, 친 천부 요인을 비롯한 반발하는 인사들을 모두 암살하고, 지속적으로 서책들을 감시하여 천부의 역사와 문자문화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장건을 일러 사마천은, “무려 13년간이나 미지의 서역을 떠돌며, 수많은 국가를 탐방하고 다양한 정보를 가져옴으로, 서로 다른 문명과의 교류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고난에 찬 여로가 최초의 동서 교역로인 비단길이 되었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그러나 반고(班固)는 한서(漢書)장건이광리전을 남겨, 그들이 역천 사건의 일당임을 밝혔고, 여동생 반소(班召)는 저들의 실제행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그들의 성과 이름자에 별도의 자의(字意)로 남겼던 것입니다.


    이광리(李廣利)

    (), “옥관(獄官) 출신의 그가 심부름꾼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고,

    (),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무덤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며,

    (), “유철과 그 일당들의 이익을 위해 똥오줌과 같은 지저분한 짓을 했으며, 마치 설사가 잦은 전염병 이질(痢疾)처럼 세상에 그런 해악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이광리는 정규 기마병과 죄수 불량배들로 구성된 지원병들을 이끌고, 세계를 돌며 무차별적 살상과 수탈을 자행했는데, 도리를 내세워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응징으로, 굴종하는 자들에게는 벼슬과 금전으로 보상하는 등, 원칙 없는 저들의 만행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그 결과 사회는 불신과 불륜 부덕 등 갖은 악습들이 팽배했고, 편승하여 저들의 분별없는 도발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총체적 부작용으로 이어졌습니다.

    반고·반소 남매는 저들의 만행이 낳은 사회적 병폐를 이질(痢疾)로 표현했는데, 심한 복통과 설사에 피와 점액이 섞여 나오며, 한 번 발병하면 세상을 휩쓸어버리는 무서운 전염병이 바로 이질입니다.

     

    허신(許愼)

    (), “정오(正午)에 대해 말 한다.”는 의미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하늘, 즉 세상의 중심 천부의 진실에 대해 밝힌다는 것이고,

    (), “그는 실상 천부문화의 진실을 가리는 한자(韓字)한자화(漢字化)작업을 매우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대가로 나라 하나를 통째로 주겠다는 동중서의 제안에 혹해서, 결국 허신은 하늘의 문자 진서(眞書)에 똥칠을 하는 악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 없는 책이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 있습니다.


    천제께서 직접 창제하신 문자라 하여 진서(眞書)로 불리던 한자(韓字), 그 골격에 해당하는 한글(韓㐎)은 연동의 관계로 묶여 서로 밀고 당기며, 창세철학과 삼천(三天)의 개벽으로 일컬어지는 약 일백 년간 역사, 그리고 삼라만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사실상 인류 문화의 정수인 것입니다그런데 허신은 ()을 코끼리 그림이다.” 말하고, “()을 도마뱀 그림이다.”라고 하며, “()를 물고기 그림이다.”라고 말합니다.


    진서가 함축하고 있는 하늘의 철학은 모두 버리고, 대다수의 한자(韓字)들을 상형이라는 원시문자 한자(漢字)로 만들어버렸으니, 부드럽고 화려한 비단이 싫다고 거친 갈옷을 덧댄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허신의 설문해자는 단지 쓰레기일 뿐이지, 어찌 책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당시 얼토당토 않는 문자 왜곡의 실상을 접한 반소(班召), ()자에 이영차라는 자의와, ()자에는부디」「제발이라는 자의를 부여하는 것으로

    진실의 전도사가 된 자기 스스로를 독려하는 한편, 천삭(天朔)의 진실에 대해 쓰고 있는 자신의 안녕과, 부디 제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땅 이름 ()이라는 별도의 훈과 음을 부여하는 것으로, 허신이 천부 진한(辰韓) 사람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혔습니다.

     

    ()

    유일하다.”는 의미이고,

    , “한수변을 거점으로 살아가는 탄()지역 사람들은 무도하기로 그 비교대상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괴한(怪漢), 천부에 대홍수의 재난이 닥쳤을 때부터, 이상한 복장을 한 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갖은 악행을 저지르던 한수변 오랑캐들을 꼭 집어 이르는 말이고,무뢰한(無賴漢), “기댈 바가 없는 한수변 

     오랑캐들이라는 의미로, 인류에 대한 배신행위를 별 죄의식 없이 저지른, 저들의 신의 없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며,아라한(阿羅漢), “괴한들을 잡아들이는 큰 언덕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저들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뭉친 불교(佛敎) 용사들을 이르는 말이니, 곧 저들의 만행을 방관만 한 것이 아니라, 종교집단의 궐기 등 천부 재건을 위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가르쳐 사람처럼 살게 해준, () 천주를 비롯한 천부의 요인 대다수를 살해해 사체를 유기하고, 한자(韓字) 왜곡과 한글(韓㐎) 말살 등, 면면이 이어져오던 천부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인용해 인류사를 새롭게 날조하였습니다뿐만 아니라, 정치력이 미치지 못했던 여러 나라에 파견되어, 천부의 정책을 적극 반영한 선진정치로, 세상에 기여해오던 기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죽였으며, 곳곳에 보급되었던 중요 도서들을 수거해서 모두 불태우는 등

    상식이하의 대담함으로 천부의 역사를 삭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저들은 역천사건의 수괴 유철을 단() 천주를 대신하는 천자로 내세웠는데, 이에 대해서 천사장 반표(班彪) 일가는 지나(支那)라는 단어를 남기는 것으로, 그 부당함에 대해 밝혔습니다.

    지나(支那)라는 것은, “천부의 한 갈래에 불과했던 변방사람들이, 천도에 칼질을 하고 그 영토를 취했을 뿐, 어찌 천자를 참칭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지나는 미어표기 차이나(china)와 함께 그들의 나라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반소(班召)는 또, 그들을 뜻하는 한수 한()자에 물의 이름」 「한나라」 「종족의 이름이외에도, 은하수」 「사나이」 「이라는 자의와 신년 ()이라는 별도의 훈과 음을 남겼는데,

    은하수, “잔별들이 아무리 많다고 태양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무도한 오랑캐는 수효가 많다고 결코 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고,사나이, “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니 어찌 이 모양이냐?”라는 의미로

    저들이 작은 이익을 취하고자 진리를 배척한 결과의 폐해에 대해 개탄한 것이며,, “아귀나 도올 같은 천박한 품성의 사내들이라고 칭하여, 거친 강변을 거점으로 살아가던 반란세력들의 천품에 대해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신년 (), “마치 숯과 같은 속 검은자들에 의해, 세월을 헤아리는 단위가 1부터 다시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숯덩이보다도 더 시커먼 천삭역사(天朔歷史)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세상을 이끌어온 도덕과 윤리 예절은 거추장스러운 허울이 되어버렸고, 잘 다듬어진 제도나 법규들 역시 깡그리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폭력과 약탈의 제물이 되었고, 무도함에 지배당한 중원땅은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뜻있는 사람들이 사탄염소라는 소문(疏文)을 놓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는데,사탄(使漢), “천부의 천사 중에 숯처럼 속 시커먼 놈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염소, “소를 싫어했다.” 또는 기체 원소의 하나를 이르는 말로, 작은 뿔 하나 믿고 아무나 들이박는 염소는 자기보다 덩치가 월등히 큰 소를 싫어하며, 악취가 심한 독가스 염소(塩素)처럼 그들이 그렇게 세상의 해악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의 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천의 반란을 저지른 유철의 어이없음과, 결국 그의 무모한 도발이 독가스처럼 세상에 해악을 끼쳤다는 지적이 바로 사탄과 염소인 것입니다.

    후 두 단어는 악()과 무모함의 대명사가 되었고, 수괴 유철(劉徹)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라는 명칭을 얻어, 두고두고 천부 후인들의 저주 대상이 되었습니다.

     

    〔〔천사(天使〕〕

    반표(班彪)- (), “마치 쪼개지듯 왕권이 칼에 의해 토막 났다.”는 것이고,(), “표범의 무늬처럼 이때 일을 선명(鮮明)하게 밝힌다.”는 것입니다.

    천부 사관의 우두머리인 천사장 반표가, 오랑캐들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이는, 역천의 반란 사건을 숨기는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 동중서의 음흉한 의도로 인함이고, 반고와 반소 남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이는

    두 남매의 목숨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하여 반표를 부리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역천의 반란과 역사 날조 거기다 문자 왜곡까지 구체화되자, 반표는 자신의 본래 성()을 버리고 분열을 뜻하는 ()으로 바꾸어, 천부 폐문의 근본 원인이 분열로 인한 상호 알력 때문이었음을 밝혔습니다.

    또 이름은 표범을 뜻하는 ()로 바꾸고, 선명(鮮明)을 별도의 자의로 부여하였는데, “잃어버린 조선(朝鮮)의 역사를 표범의 무늬처럼 뚜렷하게 밝힌다.”는 의미입니다.

    천인공노할 역천의 반란사건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성과 이름조차 바꾸어 단서로 남겼던 것입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많은 굴욕과 억울함이 있었지만, 천부의 재건만을 생각하며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귀신같은 동중서라 하더라도 내용을 전혀 알아 챌 수 없는, 마치 신화와 같은 글 한 토막을 지어, 동쪽으로 떠나는 진한(辰韓) 6부 사람들에게 들려 보내니, 바로 조선(朝鮮)이라는 글입니다.

    아래는 일연(一然) 스님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고조선본기(古朝鮮本紀) 내용입니다.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檀君王儉 立都阿斯達

    古記云 昔有桓因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神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하략-

     

    위서운(魏書云)하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조선전(朝鮮傳)은 몽땅 거짓말이다.”라는 의미이고,내왕이천재(乃往二千載) 유단군왕검(有檀君王儉) 입도아사달(立都阿斯達), “왕검이라는 단군이 있어 아사 

     달에 도읍하였는데, 대를 이은 체제 존속기간이 무려 2,000년이 넘는다.”는 의미입니다.고기운(古記云)하는 것은, “망국으로 인한 역사 상실의 경우를 대비해 기록해 둔다.”는 의미이고,석유환인(昔有桓因), “옛날에 

     환인(桓因)이 있었다.”는 의미로, 천제께서 다스리던 환국(桓國) 체제가 3,301년간 존속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기록한 것이며,서자환웅(庶子桓雄), “환인천제에게는 자식과 같은 여러 환웅들이 있었다.”는 의미로

     환웅이라고 불리던 여러 아들이 있었다고 하여, 환웅이 통치하던 배달 한() 체제가 1,565년간 존속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삭의천하(數意天下) 탐구인세(貪求人世) 부지자의(父知子意) 하시삼위태백(下視三危太伯)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이라고 하는 것은, “환웅이 여러 차례 인간 세상을 차지하고자 하는 뜻을 내 비치므로,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태백산의 삼봉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해 줄만 했다.”는 의미로, 구환(九桓) 말기 마지막 천주가 보시기에, 환웅이 난세를 평정하고 천부를 안정시킬만한 인물이었으며, 또 과거 문화로 세상을 일통했던 천제의 창세철학을 능히 지켜낼 인물로 여겨졌다는 의미입니다.


    내수천부인삼개(乃授天符印三箇) 견왕이지(遣往理之) 웅솔도삼천(雄率徒三千) 강어태백산정(降於太伯山頂) 신단수하(神壇樹下) 위지신시(謂之神市) 시위환웅천왕야(是謂桓雄天王也)하는 것은,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보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니,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 밑에 내려와 도읍하였다. 이것을 신령한 도시라 하고, 이 분을 일러 환웅천왕이라고 한다.”라는 의미로, 이것은 천사장 반표가 천부의 맥을 이은 후인들에게, 배달(倍達) ()의 초대 거발환(居發桓) 환웅(桓雄)이 집권하게 된 과정을 예로, 천부 재건의 구체적 방편을 제시해 놓은 것입니다.


    장풍백우사운사(將風伯雨師雲師) 이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범주인간삼백육십여사(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재세이화(在世理化)하는 것은, “풍백·우사·운사를 수장으로 지도체제를 구성하고, 식량·지휘·보건·사법·종교 등, 범 인간사 360여 가지 일들과, 인간세상을 구성하는 이치를 다듬고 손질했다는 의미입니다시유일웅일호(時有一熊一虎) 동혈이거(同穴而居) 상기우신웅(常祈于神雄) 원화위인(願化爲人)하는 것은, 이때 곰과 호랑이가 한 동굴에 살고 있었는데, 늘 신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의미로곰과 호랑이가 한 동굴에 살았다.”고 한 것은, 환웅의 혁명에 동참하지 않고 있던 두 족장의 신상에 대해 상징 동물을 들어 설명한 것이고, “늘 신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것은, 두 호족(豪族)의 족장이 환웅의 혁명에 동참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시신유영애일주(時神遺靈艾一炷) 산이십매왈(蒜二十枚曰) 이배식지(爾輩食之) 불견일광백일(不見日光百日) 편득인형(便得人形)하는 것은,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자루와 마늘 이십 매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능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는 의미로, “쑥과 마늘을 먹고 일백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쑥은 혁명에 사용될 병장기, 마늘은 군자금을 지칭하는 것으로, 두 족장에게 백일의 기한을 주어 병장기와 자금을 준비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웅호득이식지(熊虎得而食之) 기삼칠일(忌三七日) 웅덕여신(熊得女神) 호불능기(虎不能忌) 이불덕인신(而不得人身)하는 것은,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얻어 먹고, 21일 간 공경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곰은 은혜를 입어 여신이 되었고, 호랑이는 정성이 부족하여 사람이 될 수 없었다는 의미로, 웅족의 족장은 21일만에 환웅의 밀명을 완수함으로 혁명동지가 될수 있었으나, 호족의 족장은 완수하지 못 해 더 이상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웅녀자무여위혼(熊女者無與爲婚) 고매어신단수하(故每於壇樹下) 주원유잉(呪願有孕) 웅내기화이혼지(雄乃假化而婚之) 잉생자(孕生子) 호왈(號曰)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하는 것은,웅녀는 결혼을 할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매일 신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기도했는데, 웅이 이에 신분을 숨기고 그녀와 혼인을 해 잉태를 하고 아이를 낳았다칭하여 이르기를 단군왕검이라 한다는 의미로, 웅녀가 결혼할 사람이 없어서 매일 신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고 한 것은, 함께 혁명에 성공함으로 웅족의 족장이 여식을 천주의 후궁으로 들여보내게 되었는데, 지분 확보를 위해서는 왕자 생산이 필요했다는 것이며, 잉태를 하고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왕자를 얻어 후계구도가 완성됨으로 결국 환웅이 천주의 위를 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칭하여 이르기를 단군왕검이라 한다는 것은, 조선의 단군왕검이 집권하게 된 과정도 이와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달(倍達) ()의 초대 거발환(居發桓) 환웅이 혁명을 통해 집권하게 된 과정과, 마지막 환웅 거불단(居弗檀)의 실각한 후, 환웅 천주를 보좌하던 비왕(裨王) 왕검이 풍백·우사·운사를 수장으로 한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성해서, 함께 천부의 혼란정국을 수습하고, 조선(朝鮮)을 여는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역시 천사장 반표가 천부의 맥을 이은 후인들에게, 천부 재건의 방편으로 제시해 놓은 것입니다.


    후 이 글 조선전(朝鮮傳)은 우여곡절을 거쳐, 진한(辰韓) 6부 사람들에 의한 신라(新羅) 건국의 우듬지가 되었으며, 다시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에 전승된 뒤에는, 승려 일연(一然)의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고(班固)

    (), “마치 쪼개지듯 왕권이 칼에 의해 토막 났다.”는 것이고,

    (), “건국의 기틀이 된다.”는 의미로, 즉 망한 나라를 재건할 때는, 언어를 새로운 국경 건설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국가의 흥망을 뜻하는 ()자를, 말을 뜻하는 나라 국()자가 둘러싼 자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 저들에 의해 완전히 삭제되어버린 천부의 역사를, 후인들이 다시 찾아낼 단서가 우리말과 한글(韓㐎)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저서인 한서 역시, 천삭역사의 맥락을 헤아리는 수단으로 

     제시한 바, 따라서 그 진의(眞意)는 표면인 문장의 의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용된 한자(韓字)마다 별도로 부여된 한글 자의에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이름인 굳을 고()자를 예로 설명했습니다.

    , 굳다」 「단단하다」 「굳어지다」 「굳히다」 「완고하다」 「고루하다」 「우기다」 「독점하다」 「가두다」 「감금하다」 「진압하다」 「안정시키다」 「평온하다」 「편안하다」 「스러지다」 「쇠퇴하다」 「버려지다」 「경비」 「방비」 「수비」 「고질병」 「거듭」 「여러 번」 「굳이」 「굳게」 「단단히」 「확고히」 「반드시」 「틀림없이」 「진실로」 「참으로」 「항상」 「오로지」 「한결같이」 「처음부터」 「원래」 「본디」 「이미」 「이에」 「도리어와 같은, 굳을 고()자에 부여된 자의들이, 모두 인류가 잃어버린 역사의 실마리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매 글자마다 한글(韓㐎)로 자세한 설명이 부여된 자전 옥편(玉篇), 반고에 의해 기록된 천삭역사(天朔歷史) 역사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전래되어 오던 천부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우리들의 역사서라는 것입니다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녔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습니다바로 승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천부의 사관들은 역사를 잃어버렸을 때, 관련 문자에 구체적 정보를 숨기는 방식으로, 권력자들의 이목을 피해 당시의 진상을 후대에 전해왔던 것입니다.

    미치지 못하는 무리들의 욕심이 빚어낸 천삭역사 역시, 반고는 한서의 문장들로 그 단초를 제공하고, 반소는 관련 문자마다 자의라는 방식으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해 왔던 것입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동중서를 모방한 가상 인물 동방삭(東方朔)을 통해, 동중서를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기인으로, 유철을 그런 인물들을 포용하는 덕 있는 군주로 그렸지만반면 반고는 한서(漢書), 동중서는 저지른 수많은 죄악으로 당장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삼천갑자를 살아가는 간교한 인물로, 한무제 유철은 천부를 돌이킬 수 없는 어둠속으로 몰아넣은 사탄(使漢)으로 그렸습니다.


    특히 잡으러온 저승사자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다시 저승사자로 하여금 개울에서 숯을 빨고 있으며, 동방삭이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제안하여, 숯처럼 속이 검은 악마의 정체가 바로 동중서와 유철임을 밝혔던 것입니다우리 천부의 후손들은 이렇듯 출중한 선인들의 안배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바, 어찌 선인의 덕이 없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세상 사람들의 본이 되는 유일한 민족 한겨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소(班召)

    (), “마치 쪼개지듯 왕권이 칼에 의해 토막 났다.”는 것이고,

    (), “무력에 의해 나라가 위험에 빠졌다.” 또는 표현의 자유가 무력에 의해 통제되었다.”는 것을, 나라나 말을 뜻하는 입 구()자 위에 무력을 뜻하는 칼 도()자를 올려놓은 자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유철과 동중서의 반란을 목도한 반소·반고 남매와 아버지 반표는,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절 함구를 강요하는 거친 위협과, 천부를 저버리고 유철을 섬기도록 하는 회유가 연일 이어졌지만, 사태가 좋게 결말 지어지기를 바리며 꿋꿋이 버텨냈습니다.

    그러나 반씨 일가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천부는 결국 은혜를 모르는 오랑캐들에 의해 완전히 폐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천사장 반표는, () 천주를 따라 죽음으로 충절을 지킬 것인가, 아니며 살아서 천삭(天朔)의 실상을 후대에 전할 것인가 하는, 양단간의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죽음을 후일로 미루기로 하고, 딸 반소를 허신의 일가에 며느리로 들여보내고, 아들 반고와 자신은 사마천과 함께 동중서의 계획에 일조하는 척하며, 암암리에 천삭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반소의 이름 부를 소()자에는, 부르다」 「초래하다」 「불러들이다」 「알리다, 말하다」 「청하다」 「초청하다」 「부름이라는 자의 이외에도, 땅의 이름이라는 자의가 별도로 부여되어 있는데, 이는 허신(許愼)의 이름 ()자에 부여된 땅의 이름이라는 자의를 자신의 이름에도 붙임으로써, 자신이 허씨 일가가 있는 진()땅으로 시집갔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또한 대추 ()라는 별도의 훈과 음을 남겼는데, 이는 대추라는 말과 대추 조()자를 풀어보면, 당시의 진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고 단서를 남긴 것입니다.

    대추라는 것은, “큰 가을이라는 의미로, 많은 과실을 한꺼번에 수확할 수 있는 절정기의 가을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세작을 통한 정보전은 위험이 따르기는 하지만, 잘 하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편적 특성이 세작들과 유사한, 가을을 대표하는 열매 대추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맛과 영양은 더없이 좋으나, 여름에는 열매와 구분이 잘 안 되는 연녹색 잎 안에 날카로운 가시를 감추고 있으며,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어 잎과 확연히 구분되는 대추의 특성으로 미루어,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위험한 세작활동을 설명한 것입니다.


    ()자는, 간첩을 뜻하는 가시 자()자 둘을 포갠 자형으로, 이중간첩을 표현한 것이니, 즉 반소가 천부와 유철 사이에서 이중첩자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소는 허씨 일가로 시집가서 새로운 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자에 성의 하나라는 별도의 자의를 부여해서 밝혔습니다.


    그렇게 허신의 밑에서 첩자노릇을 하며, 천삭에 관련한 정보들을 원래 옥편(玉篇)에 추가해서 다시 편집하고, 몰래 빼내 동쪽으로 떠나는 진한(辰韓) 사람들에게 맡기니, 반소에 의해 재편집된 옥편은 신라 건국의 기틀을 잡아준 축이 되었습니다이후 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을사늑약 때 왜()에 강탈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그 내용들이 다시 역수입 되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옥편국어사전의 원전이 되었습니다.

    인류 어문(語文)의 총람인 반소의 옥편은, 하늘의 문을 열어 조력을 이끌어내는 열쇠이자, 우리 한겨레와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문화의 요체인 것입니다.

     

    후기(後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있는데, “황하는 만 번을 굽이쳐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의미로,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 중원땅을 대신하는 말입니다.

    충청도 화양계곡에 위치한 화양서원이라는 곳에는, 만절필동에서 두 글자를 딴 만동묘(萬東廟)라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화양서원은 근대조선 중기 정승이었던 우암 송시열과 그 제자들이 지은 서원이고, 만동묘는 우암과 그의 제자들이 죽은 명()나라 황제들을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남의 나라 임금 제사지내주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보다 더 사람을 언짢게 하는 것은, 만동묘를 오르는 계단 설계에 있습니다. 계단 층은 높고 폭이 좁아, 정면을 향해서는 무릎이 닿아 오르지 못하도록 한 구조로, 조선의 선비들이 명나라를 섬김에 있어, 비록 죽은 황제라 하더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말고, 몸을 옆으로 향한 채 구부리고 오르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선비들에게 처음부터 오랑캐들을 섬기도록 가르친 사대주의의 전형인 것입니다.


    또 전래되어오는 우리 가사(歌詞) 중에는 승경가(丞卿歌)라는 것이 있는데, 대략적으로 삼상 위에 승지요, 승지 위에 임금이요,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가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삼상(三相), 1품의 삼정승(三政丞)들을 이르는 것이고, 내시들을 좌우로 거느린 정3품의 벼슬아치가 승지(承旨)이니,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정승 위에 정3품의 벼슬아치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가 있다는 것도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동묘지기는 충북 괴산 화양서원의 만동묘(萬東廟)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만동묘지기, 화양서원의 만동묘를 관리하는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그 근원이 천부 고조선(古朝鮮)의 기자(箕子)들을 대신해, BC128년 천삭(天朔) 때 동중서의 안배에 따라, 각 나라에 파견되었던 사탄 유철의 개 도올(擣扤)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저들은 대를 이어 임금 위에 군림해오면서, 붕당을 조장해 신하들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자신들의 이해에 배치되면 임금을 죽이기도 하며, 자신들이 제어하기 힘든 특출 난 군신(君臣)이 출현하면, 권력 상실을 우려해 나라까지 붕괴시켜 버립니다.


    저들이 저토록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소이는, 수하에 두고 부리던 승지를 비롯한 내시(內侍)들 때문인데, 임금과 신하들은 늘 교체되는 존재지만, 내시들은 대를 이어 궁궐에 상주하는 붙박이들이기

    때문입니다또한 대다수의 승지(承旨)들은 내시들이 입양해 키운 자식들로, 거세당하여 남성을 상실한 내시들의 한(), 고스란히 입양해 기른 업둥이 승지들에게 대물림되었으며, 인하여 건장한 사대부들에 대한 승지들의 기본 정서는, 내시들과 별반 다름없이 적대적이었던 것입니다.


    승지들의 적개심에서 발로한 모략은 임금과 정승들 사이를 이간시켰고, 이러한 까닭에 저들이 정승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거의 여반장에 가까웠던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승경가에서는 삼상 위에 승지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천부의 폐문에서부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겨레에게 끼친 만동묘지기들의 악행은 이루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신라시대부터 붙박이로 궁궐에 들어앉아 우리 역사에 관여해왔는데, 군신이 화합하여 나라가 크게 발전을 할라치면, 곧 바로 작당하여 서로를 이간시키고, 붕당을 조장한 뒤 역모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게 했으며, 거기에 이웃 나라와 전쟁을 부추기는 등, 갖은 모략으로 우리들을 주저앉혀 왔던 것입니다신라를 붕괴시켜 후삼국전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든 것도 저들이고, 이성계를 앞세워 고려를 무너뜨린 것도 저들이며, 조선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민들의 팔 할 이상을 노비로 만들어 감히 저항하지 못하게 한 것도 저들이며, 숱한 천재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화(士禍)의 기획자도 저들이고, 대원군과 고종임금의 개혁을 막으려고, 나라를 통째로 왜()에 넘긴 것도 저들이며, 을사오적이니 뭐니 하며 제멋대로 역사를 날조해, 국민들 간의 불신을 부채질 한 것도 저들입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간섭을 싫어해 6.25전쟁을 일으키고, 또 분단을 고착화해, 우리 한겨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역시 만동묘지기들입니다.

    저들의 만행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자신들의 뜻에 배치되면 대통령도 죽이고, 국회의원도 시장도 죽이며, 선량한 노동자들을 선동해 회사를 망가뜨리고, 동조자인 지나인(支那人)들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문명을 

    퇴보시킵니다거세당하여 한()이 많은 자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면 다음 할 일은 너무나 빤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을 향한 적개심을 더욱 노골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 서울의 옛 이름은 한양(漢陽)이고, 서울을 가로지르며 도도히 흐르는 강이 한강(漢江)이며, 한강의 한 지류가 북한강(北漢江)이고, 수도 북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 북한산(北漢山)

    이고, 옛 궁궐 덕수궁의 대문이 대한문(大漢門)이며, 여주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사당을 강한사(江漢祠)라고 합니다.


    한수 한()자는 괴한(怪漢)」 「무뢰한(無賴漢)」 「탄식(歎息)」 「간난(艱難)」 「사탄(使漢)등의 단어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절대 좋은 의미를 지닌 문자가 아닙니다. 또한 한수(漢水)는 중원땅에 위치한 장강(長江)의 지류라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그런데 한수 한()자는 우리 수도의 이름인 한양(漢陽)에 적용되었고, 한수(漢水)와 아무 관련이 없는 강에도 적용하여 한강(漢江) 북한강(北漢江)이라 부르며, 심지어 궁궐의 대문에까지 적용하여 대한문(大漢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나(支那) 출신의 만동묘지기들이 우리 천부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문자를 수단으로 행한 저주의 한 예()입니다.

    과거에 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우리 한겨레의 정기를 끊어놓겠다고, 산천의 혈마다 쇠말뚝을 박았던 것처럼, 그들은 문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나라를 괴롭혀 왔던 것입니다.


    구체적 예로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이상한 차례로 상인들을 멸시했지만, 정작 큰 부를 누릴 수 있는 상권은 자신들이 독차지했고유학(儒學)을 간판으로 걸어놓고, 행위 전반은 오랑캐의 도로 일관했으며,

    입으로는 군사부일체를 말하며, 신하가 임금 죽이고 자식이 어버이를 업신여기는 패륜을 가르쳤으며정치는 협치(協治)와 봉건(封建)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뜻있는 선비들은 애초부터 등용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언어 왜곡이 지어낸 결과는 총체적 불신이었으며, 인하여 만동묘지기들이 조장해온 양반·군신·남녀·노소·빈부 등의 상호간 불신은, 국가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만동묘지기들의 계속된 저주로 삶이 곤해지면, 사람들은 과거 천부를 이끌었던 그 철학을 다시 찾게 된다.”는 말이 그리움이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완전한 계획이 있는데, 정작 그 계획의 수혜자가 될 국민들은, 옷 솔기에 숨어 진종일 잠이나 자는 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설계자의 속앓이를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겨레의 발전과 인류 안녕의 염원은, 곳곳에 쳐진 만동묘지기들의 저주를 걷어내는 것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