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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운동

    문화운동

    [문화운동]

     우리 한겨레는 대를 이은 선열들의 희생과 선각자들의 영도에 힘입어, 근래에 이르러서는 유사 이래 다시없 을 중흥의 호기를 맞았으나, 끈기 있게 그 맥을 이어온 ① 만동묘지기와 ② 도움을의 끝 선열들 없이 도발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던 기울어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③ 건(乾)의 철학으로 무장한 선비들이 『성삼덕(成三德)』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화운동을 전개합니다.

    고종에 이르기를 “한 사람의 인(仁)으로 나라 전체에 인(仁)을 일으키고, 한 사람의 덕진심이 나라에 덕(德)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성삼덕이 비록 몇몇 선비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사회공헌사업이지만, 결과로 대의의 대업을 완성시킬 무쌍의 힘이 될 것임을 장담하는 바, 바로 초일류국가를 지향하는 국민 여러분들의 열망이, 절대 고갈되지 않는 동력원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환경의 본질]

    언뜻 각 분야마다 경계가 분명한 것 같지만, 자연의 생태계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특히 지식이나 돈 권력 같은 요소들이 그물코처럼 사람들을 옭죄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본질입니다.



    [문화운동에 대한 정의]

    미치지 못하는 자들의 집착과 그에 따른 부패의 만연은, 사회통제의 최소한 수단인 법이나 규범이나 제도마저도 병들게 하는데, 정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다만 속박당하여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서민들과, 제 것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자들의 몰옥은 전층으로 불가피한 일입니다.

    문화운동은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 앞서, 뜻있는 학자들이 흠결 없는 학문을 내세워 사회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구한말의 고종황제가 내걸었던 새로운 출범 선언 ④광무선(光武宣)」이나, 종교를 통한 속성 성구로서 사회 혼란을 정돈하려 했던 옛 조선 선비들의 ⑤ 「천숙1년(天宿元年)」 ⑥「기원1년(紀元元年)」과 같은 의식 회복 운동을 이르는 것입니다.


    [주해(註解)]

    만동묘지기 

     만동묘(萬東廟)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만동묘」는 충북 괴산의 화양서원 안에 있는 명나라 황제를 기리는 사당이다. 이 명칭은 "항상 하는 일만 잘 했어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는 서고 동저의 염원을 상징하는 말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유래했는데, 우암 송시열에 의해 주도된 사대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이다. 내시와 승지를 훼하에 둔 만동묘지기의 권력 전횡은, 삼정승뿐 아니라 임금 조차 어찌할 수 없었는데, "삼정승 위에 승지가 있고, 승지 위에 임금이 있으며,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가 있다."는, 전해져 오는 가사 승정가(承政歌)의 내용으로 미루어 익히 짐작할 수 있다.

    ② 도움(搗物) 

     도(搗)는 공동 우물이나 잔치 음식에 독극물 등을 넣어 무차별 살상하는 암살자들을 이르는 말이고, 「을(乙)은」 관청이나 힘 있는 세가에 기생하며, 사형 집행이나 고문 등을 대신해주고 끼니를 이어가는 하류의 인간들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고려나 조선 사회는 만동묘지기와 그 하수인 도움들에 의해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노예화되었다.

    ③ 건(乾)의 철학 - 과거 이 땅의 하늘 「건(乾)」으로 일컬어지던 『환·한·조(桓·韓·朝)』 삼한의 학문을 통칭하는 말이다.

    ④ 광무(光武) 1년 

    「광무」는 "문무(文武) 양반 중 무반을 빛나게 한다."는 의미로, 근대 조선 말기 약화된 군부의 재건을 독려하고자, 고종 황제가 내걸었던 국혼재 문화 운동의 시작점 1897년 정유년(丁酉年)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조선은 개혁·개방을 싫어하고, 문무(文武)를 두려워한 만동묘지기와 도움들의 그릇된 획책으로 국력이 형편없었으며, 인하여 지나(支那)와 왜(倭) 등 인근 국가의 침탈을 불러들이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말기에 이르러 대원군 이하응과 고종 황제는 만동묘지기들을 모두 몰아내고 개혁·개방을 단행하려 하였으나, 결국 저들은 온갖 꾀를 끌어 들여 국권을 넘기고, 오히려 대원군과 고종 황제에게 덮어씌우는 것으로, 자신들의 흉악함을 감췄다.

    천숙(天宿) 1년 

    「천(天)」은 하늘처럼 기울어짐이 없는 세상을 구현함으로, 이 땅의 하늘로 기림을 받던 고조선(古朝鮮)을 이르는 것이고, 「숙(宿)」은 달빛이 전혀 없는 초하루 밤을 이르는 말이니, 「천숙(天宿)」이라는 것은, 천부 고조선의 역사를 모두 삭제해서, 달빛조차 없는 초하루밤처럼 깜깜한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의미이다. 사마천은 고조선의 멸망을 bc108년으로, 한서의 저자 반고는 bc128년으로, 둘의 기록에는 20년의 차이가 있는데, 실상은 bc128년 임자년(壬子年)에 고조선의 폐문이 있었고, 엇갈리는 20년은 저들이 역사 날조에 소요된 기간이다. 섬기던 천부 고조선을 배신한 한(漢)의 유철이 동중서 사마천 등을 시켜 역사 날조를 기도하자, 천부 제후들이 나서서 주도한 고조선 복원 운동 원년이 바로 천숙(天宿) 1년이다. 위만조선이니 기자조선이니 하는 것은 모두 저들이 날조한 거짓 역사이며, 실크로드를 개척한다시고 장건(張騫)이 13년 간 세상을 떠돌며 한 짓 역시, 역사 등 문학 등 천부 고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기원(紀元) 1년

    천부 고조선의 폐문이 있은 지 128년이 지난 경신년(庚申年)에, 또다시 천부의 제후들이 나서서 고조선 복원 운동을 주도하니 그 원년이 바로 기원 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