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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추린 천삭, 사탄 사탄使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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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5회   작성일Date 26-01-16 19:36

    본문

    □ 사탄使漢


    ❶ 유철(劉徹)

    「劉(유)」는, “임금을 칼로 위협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미의 문자입니 다. 「徹(철)」은, “서역이 길러낸 세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결국 단(檀) 천주「고열 가(古列加)」를 시해하고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범인이, 서역이 심어놓은 첩자 유철(劉徹)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단(檀) 천주의 명을 받은「천사(天使)」『유철(劉徹)』이, 한 수변을 근거지로 하여 고만고만 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탄(嘆)지역에 「기자(箕子)」로 파견되어, 치수를 비롯한 대소사를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천사(天使)」라는 것은, 천부의 사관이라는 의미이고, 「기자(箕子)」라는 것은,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의 정사를 돕고자, 천부가 일찍부터 각 나라에 파견해오던 선생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근래에 천부 진한(辰韓)의 강역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 호우로, 여러 차례 강하의 범람이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한수(漢水)와 장강(長江) 유역의 치수를 전담해 오던 유철이 호출되어, 그의 병사들과 함께 천부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엄청난 대홍수의 환란이 닥쳤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환란에 직면한 단(檀) 천주께서, 천사 유철을 불러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치수에 관한 많은 지식과 구난에 숙련된 다수의 병력을 이끌고 온 유철을 신뢰하여, 결국 재난 수습과 구휼의 전권을 위임하게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수몰로 빈손이 된 비무장의 천부 병사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와중에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두 제후의 다툼은, 차마 봐 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앞에 움츠린 천주 단군(檀君)의 위상은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때 가장 시급하게 행해져야 할 일이, 천부의 서고에 보장되어 있던 장서들을 안 전지대로 옮기는 일이었고, 따라서 대다수의 책들이 유철의 거점인 탄(嘆)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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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❷ 동중서(董仲舒) 

    「동(董)」은, “혼란 중에 매우 엄중한 일을 맡게 되었으며, 그의 주관 하에 천부의 강역을 비롯한 세상 땅들이, 완전히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중(仲)」은, “그가 유철을 보좌하던 2인자였다.”는 것입니다. 「서(舒)」는, “면면히 이어져 오던 천부의 역사를 모두 흩어버리고, 짐짓 편안한양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는 의미로, 결국 동중서는 역천의 반란을 저지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흉을 떠는 매우 저속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역사서 「사기(史記)」 와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옥편(玉篇)」 등, 사실상 천부의 문화 전부를 수중에 넣게 된 유철은, 꿈틀대는 검은 욕망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서역이 길러 동방 천부에 심어놓은 첩자였지만, 작금은 한수와 장강유역에 파견되어, 그곳 사람들을 다스리는 기자(箕子)였기에, 그곳을 보다 발전시키 고, 나아가 완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기여한, 최고의 지도자로 기림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탄(嘆)지역의 현실은,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할 수단이 없는 문맹지대 였고, 사물을 그림형태로 표현하는 원시문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확연히 대비되는 천부의 문자문화와 역사가 그토록 탐이 났던 것입니다.  이때 유철의 측근 중 동중서라는 매우 간특한 자가 있어, 그의 음흉한 흉중을 미리 헤아리고 역천(逆天)을 부추겼는데, 이에 유철은 짐짓 아닌 양 겉으로는 손 사례를 치고 있었지만, 탐욕으로 얼룩진 그 속내를 휘번뜩이는 두 눈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끄덕이는 유철의 턱 끝을 신호로 동중서의 밀행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숱한 천부의 요인들이 구휼대로 믿었던 유철의 병사들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검붉은 피는 범람하는 황톳물에 섞여 구분되지 않았고, 살해당한 시신의 대다수는 수재를 당한 다 른 사체들과 함께 바다로 떠내려갔습니다. 대소신료들의 실종 등 의혹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으나, 황망한 중이라 누구하나 나서서 점검하는 사람이 없었고, 와중에 고지대로 몽진했던 단(檀)천주와 두 제후 역시 함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사건을 목도한 대다수 사람들 역시 죽임을 당했으나, 천사장「반표(班彪)」와「반고(班固)」「반소(班召)」두 남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도구로 활용한다는 동중서의 음흉한 계획에 따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후일 『한서(漢書)』를 지어, 이때의 일을 사실 그대로 후대에 전한 반고(班固)는, 동중서의 음흉함에 대해 「삼천갑자(三千甲子)」「동방삭(東方朔)」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삼천갑자(三千甲子)」는, 3,300여 년 간 이어져 오던 「환(桓)」의 역사를 이르는 것입니다. 「동방삭(東方朔)」은, 동중서가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오던 동방의 역사를 모두 삭제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단(檀) 천주의 존함을 “나라의 패망과 함께 천주의 옥체가 칼로 해체되는 가혹함이 더해졌다.”는 의미의 「고열가(古列加)」라고 기록하고, 관련 문자마다 별도의 자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천의 범법자들이 이름으로 사용한 문자에도, 저들의 구체적 범범 사실들을 별도의 자의(字意)로 덧붙여서, 반란사건의 전모에 대해 단서를 남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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